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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붙은 곱창집·쇠고기집, 알고 보니 ‘마장동 패밀리’

중앙일보

입력

정신과 의사 윤대현의 ‘압구정곱창’과 ‘우텐더’

‘너무 튀지도 잘난 척 하지도 않는’ 쇠고기 본연의 맛이 자랑인 ‘우텐더’.

‘너무 튀지도 잘난 척 하지도 않는’ 쇠고기 본연의 맛이 자랑인 ‘우텐더’.

최근에 소개했던 ‘왕자장어(강남통신 187호 소개)’ 사장님께 근처 맛집 2곳을 추천받았다. 첫 번째는 일본식 주점 ‘이치에’. 오래 전부터 알던 곳인데 우연의 일치로 ‘왕자장어’와 같은 지면에 소개되어 ‘어머 웬일’하며 혼자 웃었다. 사소한 것에 감정 반응이 격해지는 것도 아재 심리 변화의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됐다. 두 번째 집은 ‘압구정곱창’. 추천해준 사장님은 “곱창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데도 맛있어 자주 간다”고 했다.

‘압구정곱창’에선 주문을 하면 주방에서 초벌구이가 잘된 한판을 가져다준다.

‘압구정곱창’에선 주문을 하면 주방에서 초벌구이가 잘된 한판을 가져다준다.


자칭 곱창 매니어인 직장 동료들과 함께 ‘압구정 곱창’을 찾아갔다. 근처에 가니 벌써 곱창 굽는 냄새가 솔솔. 동료들은 “냄새만 맡아도 맛있는 곳”이라며 들떴다. 자리에 앉으니 노련한 외모의 사장님이 모둠구이와 소곱창구이를 추천한다. “구워서 갖다 드릴까요?” 하길래 “넵” 했더니 주방에서 잘구워진 한 판을 가져다주는데 일단 비주얼이 훌륭하다. 곱창부터 막창까지 초벌이 잘 되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나온다. 여기에 부추를 올려 마무리.

일하다 쌓인 스트레스 풀기 위한 회식자리에서 음식이 맛없으면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때문에 회식 장소를 권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많은데 일단 성공한 듯 느껴져 뿌듯했다. 동료 몇 명은 지금까지 먹어 본 곱창 중 최고로 맛있다고 한다. 맛이 정말


골목 입구부터 맛있는 고기 냄새 솔솔
치즈 볶음밥, 규카츠, 한우라면
사이드 메뉴로 색다른 맛도 즐겨


담백하고 깔끔하다. 사장님께 맛의 비법을 물으니 겸연쩍게 “좋은 재료를 쓴다”고 답한다. 매일 마장동에서 생곱창을 가져와 쓴다는 것. 10년간 부천에서 곱창집을 하다가 2015년 이 곳으로 왔단다. 같이 나오는 세 종류 소스(기름장, 창양고추가 들어간 간장 소스, 고추장 소스)도 곱창 먹는 재미를 증가시킨다. 기본 찬인 황태콩나물국과 계란찜도 맛있다. 깻잎 절임도 함께 먹으니 좋았다. 곱창이 사라져 가는 시점에 치즈 볶음밥과 알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니 모두들 흐뭇한 얼굴이다.

넉넉한 마음으로 곱창집을 나서는데 바로 옆에 초록색으로 입구를 단장한 가게가 하나 보였다. 안이 환히 비쳐 보이는데 사람들 모습이 너무 밝고 즐거워 보인다. 뭘 파는 집인가 들여다보니 고기집이다. 가게 이름은 ‘우텐더’. 소(牛)와 부드럽다(tender)의 합성어인 듯싶다. 부드러운 소고기쯤으로 해석하면 되려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가성비 좋은 고기집’으로 소개돼 있었다. 압구정 좁은 골목에 곱창과 쇠고기 맛집이 나란히 붙어서 이렇게 장사가 잘 되고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네. 절친 선배인 건국대 정신과 하지현 교수와의 약속장소를 ‘우텐더’로 정했다.


평소 둘이 편하게 한 잔 할 때는 내면의 마이너 감성을 좇아 허름하고 편한 가게를 찾는 편인데, 오랜 만에 세련된 인테리어의 쇠고기 집에 앉아 있으니 좀 어색했다. 실제로 남자 둘이 온 테이블은 우리뿐. 잘생긴 사장님이 안심을 추천하고 직접 구워준다. 이곳을 열기 전 마장동의 유명 한우집 ‘본앤브레드’에서 일했고, 지금 그곳에서 고기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압구정곱창’도 마장동에서 재료를 가져온다고 하니 두 곳은 느낌은 다르지만 뿌리는 동일한 ‘마장동 패밀리’인 셈이다.


사장님은 안심을 구울 때 후춧가루를 뿌려가며 굽고, 다 구운 시점에 잠시 고기를 접시 위에 옮겨 뚜껑을 씌워 덮는다. 육즙이 잘 농축되는 효과 때문이란다. 고기를 입에 넣으니 맛있다. 이게 맞는 표현인진 모르겠지만 ‘나 진짜 너무 맛있지 않냐’ 자랑하지 않는 느낌이 좋았다. 평소 ‘나 정말 프리미엄 아니니’ 하는 소고기 맛에는 약간 거부감이 느껴졌는데 그런 거부감이 없다. 선배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고, 결국 둘이 4인분이나 먹어버렸다.


요즘 사이드 메뉴를 잘 만들어서 또 다른 재미를 주는 곳들이 많다. 여기도 메뉴판을 보니 육회·육전·곰탕·비빔밥 등에 한우라면까지 있다. 제일 엉뚱한 건 규카츠(일본식 쇠고기 튀김)였다. 배는 부르지만 그 맛이 궁금해서 주문했는데, 헐…이것도맛있다. 촉촉한 날것 느낌의 쇠고기를 튀김옷이 싹 두르고 있는데 식감이 훌륭했다. 취향대로 숯불에 구워먹어도 된다니 이것도 재밌다. 다음엔 육전과 라면을 꼭 먹어봐야겠다.


최근 들어 엉뚱하게 미식 칼럼을 쓰게 되면서 내삶에 긍정적인 효과가 생겼다. 하나는 현재에 대한 몰입도가 증가한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식사할 때 조금 더 음식 맛, 음식점 분위기, 음식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노하우,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의 표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과거와 미래도 중요하지만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현재다. 생각의 대부분이 과거와 미래에 가 있으면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또 다른 긍정적인 효과는 원칙의 소중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맛있는 음식점은 결국 재료와 정성이 훌륭하다. 요즘 우리 사는 곳이 영 맛이 없어진 듯하다. 원칙을 좇아 다시 맛을 찾았으면 좋겠다.


글 윤대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라이프스타일 의학에 관심이 많다. 현대인들의 맛집에 관한 관심은 음식 맛뿐 아니라 공감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됐다고 믿기에 늘 새로운 맛집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가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도전하는 ‘노력형 미식가’.


압구정곱창
·주소: 강남구 신사동 643-21(압구정로 42길 25-8)
·전화번호: 02-511-0042
·영업시간: 오후 5시~자정, 일요일 휴무
·주차: 불가능

·메뉴: 소곱창·막창·대창 구이 각 1만9000원, 특양구이 2만2000원, 모둠구이 2만5000원, 소곱창전골 1만5000원


우텐더
·주소: 강남구 신사동 643-20(압구정로42길 25-10)
·전화번호: 010-8001-3888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30분, 일요일 휴무
·주차: 가게 옆 유료 주차장, 발렛 가능
·메뉴: 치마살 150g 3만9000원, 안심·등심·채끝 150g 각 3만6000원, 암소불고기 150g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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