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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적폐 청산이라는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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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선거판은 두 개의 포퓰리즘이 지배한다. 퍼주기와 벌주기(Penal)다. 퍼주기 포퓰리즘은 선거철 단골이지만 이번에 특히 더하다. 대통령 탄핵으로 여당이 사라진 틈을 타 옛 여권까지 가세했다. 청년 수당제, 고용 할당제, 기본소득제는 물론 군 복무 1년 단축, 가계부채 탕감, 최저임금 1만원까지 메뉴도 가지가지다. 대부분 경제학적으로 논란이 끝나지 않았거나 재정 부담만 늘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큰 것들이다.

퍼주기보다 나쁜 벌주기 #‘응징 환상’이 나라 쪼갠다

벌주기 포퓰리즘은 본래 범죄학에서 쓰는 용어다. 범죄학자 존 프랫은 『형벌 포퓰리즘(Penal Populism)』에서 “범죄를 엄하게 다뤄야 한다는 포퓰리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그들의 목적은 범죄 해결이 아니라 징벌 자체”라고 말했다. 벌주기 포퓰리즘이 정치로 옮겨 오면 유권자에겐 ‘달콤한 응징의 환상’을 심어준다. 응징의 대상은 가진 자, 힘센 자다. 이때 투표는 평소의 억눌림, 시기·질투를 분풀이하는 강력한 통로가 된다. 정치인들은 서민 유권자의 이런 환상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데 천재적이다. 지난 주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도널드 트럼프를 벌주기 포퓰리즘의 달인으로 묘사하는 칼럼을 실었다. 트럼프는 멕시코인을 강간범으로, 난민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았다. 월가와 워싱턴의 엘리트도 징벌 프레임에 가뒀다. 이른바 트럼프판 ‘적폐 청산’이다. 미국인은 그런 트럼프를 선택했고 갈등과 우려도 현실화했다. 트럼프 취임 두 달 만에 미국은 둘로 갈렸다.

두 개의 포퓰리즘이 결합하면 위력은 더 커진다. 결과는 뻔하다. 망국(亡國)이다. 그런데도 우리 유력 주자들은 두 포퓰리즘을 자유자재로 쓴다. 솜씨 좋기로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당할 자가 없다. 그는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벌주기 포퓰리즘에 앞장섰다. 재벌·기득권은 물론 우등생(특목고 폐지)·능력자(성과연봉제 폐지)를 없애겠다고 했다. 세금으로 81만 개 일자리 만들기나 가계부채 탕감의 퍼주기도 남발하고 있다. 그가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더 크다. 트럼프는 그나마 규제 완화와 국경세 도입, 미국 기업의 환류 유인 등 성장 정책도 함께 내놓았다. 그러나 문재인에겐 성장 정책이 잘 안 보인다. 나눌 것이 없을수록 나누기 싸움은 더 치열해지는 법이다.

이런 망국적 포퓰리즘을 이번 선거부터는 걷어내야 한다. 답은 나와 있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퍼주기는 지금부터 서둘러 제도를 만들면 어느 정도 거를 수도 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네덜란드식을 제안했다. 정당이 선거 공약을 등록하면 재무부가 비용을 계산한 보고서를 선거 전에 공표하는 것이다. 국가 재정을 다루는 재무부의 전문성을 활용해 신뢰성 있는 숫자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박재완은 직접 실험도 해봤다. 5년 전 박재완의 기재부는 ‘공약 검증팀’을 만들었다. “여야의 복지 공약 실천에만 향후 5년간 최대 340조원이 들 것”이란 ‘뭉뚱그린’ 추계도 발표했다. 정당별, 항목별로도 분석했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내놓지 못했다. 공무원 중립을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가 걸림돌이 됐다. 당시 선관위는 기재부를 선거법 위반으로 경고했다.

여당이 사라진 지금이 적기다. 기재부와 국회가 ‘공약 검증단’을 만들자. 5당이 협의해 선거법을 바꾸면 된다. 선관위 측도 “어떤 공약에 얼마나 돈이 드는지 제시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언론에서 정책·공약을 비교할 때 서열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벌주기 포퓰리즘은 그야말로 답이 없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 ‘적폐’란 주홍글씨를 한 번 새겨놓기만 하면 시민들은 분노하고, 언론은 불을 붙이고, 정치인은 폭발시킨다. 정권이 바뀌고 나면 잠시 조용해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다음 선거 때면 또 ‘벌주기’가 반복된다. 나보다 더 가지거나 더 똑똑한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런 유권자가 그런 지도자를 뽑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겠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