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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vs과시, 1억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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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영국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 사보이어의 FUGO-No.1 모델. 프레임과 헤드보드·매트리스 종류에 따라 가격은 1억5000만원대까지 올라간다.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GLS 350 d 4MATIC 모델.

영국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 사보이어의 FUGO-No.1 모델. 프레임과 헤드보드·매트리스 종류에 따라 가격은 1억5000만원대까지 올라간다.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GLS 350 d 4MATIC 모델.

1억원이 현실감이 없다면 2000만원 정도로 상상해보자.
수중에 2000만원이 있다면 중소형 자동차와 프리미엄 침대 중 어떤 것을 손에 넣을까? 언뜻 자동차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의외로 요즘에는 침대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침대만큼 오랜 시간을 사용하는 물건이 없다.
하루 3분의 1의 시간을 매일같이 사용하고 한 번 구입해 25년을 쓴다. (프리미엄 침대의 보증기간은 20~25년) 게다가 요즘, 잠이 고픈 시대다. 피곤하다는 말을 늘 달고 사는 번 아웃(burn-out, 소진·탈진) 시대, 수면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다.

자료: 한국 가구산업협회, 한국 수면산업협회(2015년 기준)

자료: 한국 가구산업협회, 한국 수면산업협회(2015년 기준)

오는 5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서민정(34)씨는 주말마다 예비 신랑과 혼수용 침대를 고르러 다닌다. 다른 가구는 몇 군데 둘러보고 바로 결정했지만 침대만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백화점은 물론 여러 침대 브랜드의 쇼룸에 들러 직접 누워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서씨는 “허리가 좋지 않은 데다 수면의 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매트리스 만큼은 큰 돈을 투자해서라도 좋은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며 “워낙 다양한 브랜드에서 고급형 매트리스가 출시되어 꼼꼼히 둘러보려니 벌써 몇주째 침대만 보러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홍보대행사 이사인 심연수(47)씨는 8개월 전 큰맘 먹고 2600만 원대의 고가 침대를 들여놓았다. 스웨덴 침대 브랜드 덕시아나의 중간 사양 모델로 스프링 강도를 체형에 맞게 조절하고 높이와 각도가 조절되는 헤드보드 등받이까지 더했다. 처음엔 침대에 수천만 원을 투자하는 게 사치스럽게 보일까봐 조심했지만 몇 개월 직접 사용해보고 나니 만족도가 높아 주변에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고 다닌다. 심씨는 “나이 들수록 가방이나 구두, 옷처럼 몸에 걸치고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면이나 음식 등 건강이나 삶의 질에 직결되는 것에 투자하게 된다”며 “침대에 왜 진작 투자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침실 풍경도 바뀌고 있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선혜림씨는 “요즘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침실은 가능한 아늑하게 꾸미고, 방 안에 침대 하나만 놓는 방식이 대세”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가장 큰방을 침실로 삼아 침대와 붙박이장, 화장대, 심지어 TV 까지 함께 구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요즘 들어서는 침실에는 침대만 놓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은 방을 침실로, 큰 방을 가족실이나 서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선씨는 “빛을 가려주는 암막 커튼이나 공기 청정기, 고가 매트리스, 프리미엄 침대가 흔해졌다”며 “잠을 자는 공간이라는 침실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 최상의 수면 환경을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1억짜리 침대가 팔린다
사단법인 한국수면산업협회는 2015년 기준 국내 수면 관련 시장 규모를 2조원대로 추산했다. 같은 시기 미국 수면시장이 대략 20조원, 일본이 6조원으로 앞으로의 잠재력이 더 클 전망이다. 수면학과 경제학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는 침대 및 매트리스 시장이다. 한국 가구산업협회는 침대 시장 규모가 2004년 5000억원에서 2014년에 1조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신세계 백화점 생활팀 조재훈 바이어는 “침대를 구입하러 오는 소비자들의 예산 자체가 올라갔다”며 “3년 전만해도 침대 구입에 평균 200만~300만 원대를 사용하는 고객이 많았다면 지금은 300만~400만 원대를 쓰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침대 고급화 바람을 타고 에이스 침대는 2016년 9월 프리미엄 라인인 ‘헤리츠’를 론칭했다. 800만 원대부터 시작해 최고가는 프레임까지 더하면 2000만 원대를 상회한다. 시몬스 침대 역시 2016년 7월 500만~2000만 원대의 ‘뷰티레스트 블랙’을, 씰리침대는 2016년 6월에 3000만 원대의 ‘크라운 쥬얼’라인을 론칭했다.

‘뇌 디톡싱’ 위한 투자, 고가 침대 잘 팔려
거위털침구·수면안대·캔들 시장도 쑥쑥
사무실에 낮잠방 … 수면 카페도 성업

에이스 침대에서 출시한 최고급 라인 헤리츠 블랙 매트리스. 프레임을 제외한 매트리스만 1500만원대부터 시작.

에이스 침대에서 출시한 최고급 라인 헤리츠 블랙 매트리스. 프레임을 제외한 매트리스만 1500만원대부터 시작.

수입 브랜드는 가격대가 더 올라간다. 700만~300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 덕시아나의 전략기획팀 김종훈 부장은 “2010년 즈음부터 가치소비 트렌드가 생겨나면서 프리미엄 침대 시장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며 “덕시아나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매출 규모가 200% 성장했다”고 말했다.

백화점도 경쟁적으로 프리미엄 침대 브랜드를 유치하고 있다. 2015년 2월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스웨덴 침대 브랜드 해스텐스가 입점한 이후 8월에는 현대 백화점 판교점에 프랑스 브랜드 사보이어가, 2016년 4월에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 영국의 바이스프링이 입점했다. 이 세 브랜드 모두 침대 하나에 최소 2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에 이른다.

기능성 침구 시장도 뜨겁다. 거위 털이나 텐셀 등 고급 천연 소재를 사용하고 알러지 예방에 진드기 방지 기능을 더한 프리미엄 침구는 불황 없이 성장 중이다. 2009년에 론칭한 프리미엄 베딩 브랜드 소프라움은 2011년 매출 30억원에서 2016년엔 150억원을 기록, 연평균 39%의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소프라움의 침구는 세트당 평균 100만원대다.

수면 안대와 수면 양말, 캔들, 디퓨저 등 수면 환경 개선을 위한 소품의 인기도 높다. 헬스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 따르면 수면 안대와 온열 기능의 아이 마스크는 2017년 1~3월에 전년 동기대비 51%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만성적 ‘수면빚’에 허덕이는 한국인 
수면 시장이 왜 이렇게 커지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수면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잠 부족 국가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조
사대상 OECD 18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40분이나 짧다. 직장인으로 범위를 좁히면 더 심각하다. 성인 권장 수면시간은 7~9시간. 2015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에서 조사한 한국 직장인 평균 수면시간은 6.12시간에 불과하다.

씰리침대가 2017년 1월에 발표한 ‘씰리 슬립 센서스’의 보고서를 살펴보면 보다 자세한 비교가 가능하다. 한국·호주·중국·영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 1만1381명 대상으로 수면 현황을 조사했더니, 한국은 ‘수면빚’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수면빚(sleep debt)은 수면 부족 시간이 쌓인 것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하루 7시간 수면을 취해야하는 사람이 5시간만 자면 2시간의 수면 빚을 진 셈이 된다. 한국 여자는 연간 약 15일, 남자는 연간 18.5일의 수면빚을 지고 있었다. 불면증도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해 수면의 양과 질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4당5락’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뜻이다. 그 동안 한국 사회가 잠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자기 계발에 몰두하고, 야근을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허핑턴포스트 창업자이자 수면 전도사로 활약 중인 아리아나 허핑턴은 “우리는 과로와 번아웃 증상(일에 몰두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탈진한 상태)이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라는 ‘집단 환상’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잠을 줄여가며 일하다가 2007년 4월에 만성적 수면 부족으로 쓰러져 큰 부상을 당했다. 이후 잠의 중요성을 깨닫고 책 『수면 혁명(The SleepRevolution)』을 펴낸 뒤 미국 전역의 대학·기업을 다니며 숙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수면 시간을 줄여 뭔가를 성취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잠을 줄이고 일에 몰두했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미국은 수면 부족으로 인해 근로자당 연간 11일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비용으로는 1인당 연간 약2280달러, 사회 전체로는 총 63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다.

7시간41분 … 한국은 잠 부족 국가
잠 쪼개 공부하고 일하다 ‘번아웃’
유튜브 ‘잠 오는 소리’ ASMR 인기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인기인 ASMR 영상. 고요한 가운데 브러시 소리만 들려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인기인 ASMR 영상. 고요한 가운데 브러시 소리만 들려 귀를 기울이게 된다.


서울수면센터 수면 전문의 한진규 원장은 평균적으로 1시간의 수면 부족이 30%의 뇌기능 저하를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거칠게 말해, 충분한 잠을 잔 근로자 10명이 1시간씩 잠을 덜 잔 근로자 13명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잠자는 동안 ‘브레인 워싱’
성취를 위해 잠을 너무 등한시 여겼던 탓일까. 최근에는 거꾸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고생인 사람들이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만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46만 명을 넘어섰다. 2011년에 약 32만5000명에서 2015년에 46만2000명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8%를 상회하는 수치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ASMR’이라는 낯선 이름을 단 영상들이 인기다. 자율감각 쾌락반응이라는 뜻으로 등장인물이 나와 조용한 가운데 속삭이거나 비누를 깎거나, 브러시로 손등을 간질인다.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으로 특정 소리가 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줘 젊은층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자기 전 ASMR영상을 본다는 사람들이 많다.

공유 사무실 ‘스튜디오 블랙’을 운영하는 현대카드는 입주사들이 함께 사용하는 10층 공용공간에 낮잠방(nap room)을 만들었다. 캡슐 호텔처럼 1인용 침대 6개가 놓여있는 공간으로 점심시간 이후 2~4시경에 특히 북적인다. 생활 패턴이 불규칙한 스타트업 종사자들을 위한 배려 공간으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어 이용률이 높다.

사무실 안에 흔치 않은 낮잠방을 밖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윤혜리(35)씨는 가끔 점심시간에 밥 대신 잠을 택해 회사 근처 수면 카페를 찾는다. 상사나 동료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서울 강남역과 역삼역 일대에는 ‘꿀잠’ ‘쉼스토리’ 등 수면카페 5~6곳이 성업 중이다. 통상 50분 수면에 음료 1잔으로 구성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데 가격은 6000원에서 1만원 정도다.

잠시라도 단잠을 자고 싶다는 현대인의 수면 욕구는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박탈당한 수면을 상징한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2~3년 사이에 수면 검사 받으러 오는 환자가 확 늘었다” 며 “밤에도 늘 밝은 빛 공해와 스마트 폰, 커피 등의 카페인 음료를 직접적 원인으로 볼 수 있고 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근 수면 전문가들은 잠의 효용 중 브레인 워싱(brain-washing)에 주목하고 있다. 뇌 디톡싱(detoxing)으로도 불리는 이 수면 이론은 말 그대로 잠자는 동안 뇌세포 사이에 쌓인 찌꺼기, 즉 독성 단백질들이 씻겨 내려간다는 의미다. 자는 동안 뇌세포의 부피가 작아지면서 독성이 있는 나쁜 단백질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길이 생긴다는 것. 이때 빠져나가는 나쁜 단백질에는 치매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라고 했다. 이제 바꿔서 ‘잠은 돈’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잠이 돈을 버는 시대다. 남의 잠이든, 나의 잠이든 마찬가지다.

숙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

빛을 차단하는 것이 숙면의 지름길. 수면 안대나 암막 커튼을 활용할 것.

빛을 차단하는 것이 숙면의 지름길. 수면 안대나암막 커튼을 활용할 것.

수면 양말

수면 양말

수면 양말이나 보온 물 주머니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수면 양말이나 보온 물 주머니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잠자기 1시간 전부터 형광등보다 은은한 조도의 백열등을 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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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향기의 룸 센트나 아로마 캔들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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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성 좋은 소재의 침구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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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피로를 풀어주는 온열 아이 마스크. 빛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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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사진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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