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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는 노예 되지 말고 시간을 지배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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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2면

[경영, 인문학에 길을 묻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

1 『모모』 초판본 표지(1973)

1 『모모』 초판본 표지(1973)

미하엘 엔데(Michael Ende, 1929~1995)는 독일의 저명한 판타지 소설 작가이다. 1973년에 발표한 『모모』는 그의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7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세계 40여 개국에서 즐겨 읽히고 있는 소설 『모모』에는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흔히 『모모』를 아동용 동화로 알고 있지만, 읽어 보면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줄거리를 살펴보자.

시간은행에 시간 맡기고 #불행해진 마을 사람들에게 #모모가 시간 되찾아줘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들 #시간단축 경영 능사 아냐 #초우량 기업, 유연 근무제로 #직원 창의성 높이기에 초점

어느 도시의 변두리,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 ‘모모’라는 이름의 한 여자아이가 부모 없이 혼자 살고 있다. 모모에게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모를 만나 대화하게 되면 혀가 저절로 풀리면서 말을 많이 하게 되면서 스스로 유쾌해지고 지혜가 생겨났다.

어느 날 이 마을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회색 피부에 회색 옷을 입고 시가를 엄청 피워대는 ‘회색신사’들이 찾아왔다. 자신들을  ‘시간은행’에 근무하는 사원이라고 소개하고 자기들의 은행에 시간을 맡길 것을 권유하였다. 나중에 두둑한 이자를 붙여서 시간을 되돌려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시간은행에 시간을 저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유롭게 살던 마을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겨 허둥대는가 하면, 퇴근 후 아예 친구를 만나러 가지도 않고, 기르던 개와 고양이도 버린 채 항상 피곤해하면서 마음이 차갑게 변해갔다. 모모는 친구들과 함께 회색신사들의 꾐에 넘어가지 말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시간저축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루는 회색신사 한 명이 모모를 찾아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지 말도록 회유도 하고 협박을 하려고 했으나, 모모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그녀가 자신의 말을 너무나 잘 경청하는 바람에 그 회색신사는 스스로 혀가 풀려 그들의 정체에 관한 엄청난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비밀은 회색신사들은 이미 죽은 목숨인데 담배를 피면서 시간을 태워야 계속 생존할 수 있는 존재이며, 마을사람들이 시간은행에 착실히 저축한 시간들은 결국은 하나도 남지 않고 연기와 함께 허공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마을 사람들은 시간을 돌려받지 못해 수명 단축으로 일찍 죽게 되는 재앙을 맞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회색신사들의 엄청난 음모를 알게 된 모모와 친구들은 마을사람들의 시간을 다시 찾아올 방도를 놓고 고민하다가 ‘시간의 관리자’로 알려져 있는 호라 교수를 찾아가서 시간을 되찾아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모모는 호라와 그가 기르는 거북이 ‘카시오피아’의 도움을 받아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시간은행에 저축된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모두 되찾는 데 성공한다. 모모 일행이 마을에 돌아와 보니 마을은 다시 생기와 여유가 넘치는 곳이 되어 있었다.

2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신사들

2 모모에 등장하는 회색신사들

『모모』는 사람들이 시간에 대해 어떤 관념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는 상징적 소설이다. 모모의 이야기는 오늘도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삭막한 기업과 그 구성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기업에서는 흔히 시간경영을 잘할 것을 강조한다.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시간낭비는 철저히 배격하고 단 몇 분의 시간이라도 일과 관련된 유익한 일에 사용해야 하는 것이 시간경영의 요체이다. 『모모』를 읽고 나니 이런 의문이 생긴다. ‘시간경영을 잘하면 사람들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다양한 업무방식을 도입, 생산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오늘날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평균 60초에 한 대씩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시간 단축에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자동차 산업은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무인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과는 무관하던 구글과 같은 세계 굴지의 IT기업이 자율주행차를 만든다고 하니까 전통적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하게 되었다. 제조업의 전략이 이제는 더 이상 시간과의 싸움이 아닌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자동차 산업을 플랫폼 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플랫폼이라는 IT기술 위에 여러 회사에서 제조한 부품 모듈들을 레고 블록처럼 올려놓으면 자동차는 완성된다. 이제 생산시간 단축보다 중요한 것은 우수한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의 확보가 되고 있다.

원가절감과 시간단축은 이제 더 이상 능사가 아니다. 시간단축이 아니라 시간을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초우량기업들은 시간을 느슨하게 관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SAS 소프트웨어 같은 기업은 모두 ‘유연적 근무시간제도(flextime)’를 도입하고 있다. 직원들은 근무하고 싶을 때 나가서 근무하고 끝내고 싶을 때 근무를 끝낼 수 있다. 또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사를 돌보는 데 시간을 쓰며 육아휴가를 간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유연하게 일하면서도 치열하게 창의적으로 일을 한다.

국내의 한 스마트폰 앱 개발 회사는 매일 오후, 업무시간 중에 직원들이 조를 짜서 카트라이트 게임을 하도록 해서 성적에 따라 시상을 한다. 이렇게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 업무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회사는 또 명절을 앞두고 직원들이 업무시간 중에 외출하여 선물을 사는 시간을 허용하여 사기를 높이고 있다. 직원들은 이토록 자신들을 배려하는 회사를 위해 신명을 바쳐 일하고 우수한 성과로 보답을 한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의 우량기업들은 대부분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이다. 우리는 평균 60시간이 넘도록 초과근무를 밥 먹 듯이 하지만 왜 경쟁력은 우리가 그들보다 한참 뒤처져있는 것일까? 이제는 우리들의 시간경영 방식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모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시간에 쫓겨 사는 노예가 되지 말고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나와 가족의 조그만 행복을 위해 쓰는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큰 한 방을 도모하기 위해 쫓기 듯이 사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시간경영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친구나 이웃사람들을 만나 담소를 즐기고, 주말에 아이들과 캠핑을 떠나기 위해 보드게임을 챙기고 텐트를 손질하는 데 기꺼이 시간을 쓰는 모모와 같이 여유롭게 소통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김성국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장
서울대 인문대 졸업,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박사, 베를린 자유대 등 객원교수 역임. 대한리더십학회 초대 회장, 한독경상학회·한국인사조직학회 및 아시아-유럽미래학회 회장, 한국경영대학·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인적자원관리 5.0』 『모멘트 리더십』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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