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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마음 품위있게 유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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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22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6),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1)의 이미지를 차용한 센트룸의 광고들. [엔자임헬스 제공]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6),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1857),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1801)의 이미지를 차용한 센트룸의 광고들. [엔자임헬스 제공]

에드워드 호퍼의 ‘기찻길 옆 호텔’(1952)과 다른 작품들을 오마주해 만든 SSG닷컴 쓱 광고들. [신세계 제공]

에드워드 호퍼의 ‘기찻길 옆 호텔’(1952)과 다른 작품들을 오마주해 만든 SSG닷컴 쓱 광고들. [신세계 제공]

광고가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종합비타민 브랜드 센트룸의 최근 광고는 네덜란드의 대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작을 보여준다. 몇 초 후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예지원은 침침한 눈을 참지 못해 껌뻑이고, 밀레의 ‘이삭줍기’장면에서는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최민용은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편에서 체력이 고갈된 나폴레옹 역을 맡았다. 제품의 효능을 유머와 함께 전달한다는, 전형적인 광고 전략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례다.

<새 연재>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명화를 차용한 광고가 노리는 것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SSG의 명화 광고는 훨씬 심오하다. 이 광고는 정적인 도시의 고독을 기가 막히게 묘사한 미국의 사실주의 작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인용했다. 인상주의나 고전주의 작가가 아닌 호퍼를 택했다는 것에서부터 참신하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고, 여성들이 사랑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타깃 일치도가 높다. 도시적, 개인적, 고급스러움이라는 키워드 측면에서 명화와 브랜드의 싱크로율도 최고 레벨이다. 명화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비주얼을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광고 자체가 하나의 명화가 되었다(실제로 이 광고는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을 하는 과정에 색을 입혔다). 단순히 명화로 도배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치밀하게 기획, 실행한 사례다.

“생활이 곧 예술”라는 메시지 전달

사실 광고와 미술의 만남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몽마르트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이 물랑루즈의 광고 포스터를 그린 것이 19세기 말이니까 120년도 넘었다. 1981년부터 시작된 압솔루트(Absolut) 보드카의 아트 광고도 앤디 워홀, 루이스 부르조아, 키쓰 해링 같은 유명 화가들이 참여한 덕에 예술작품(artwork)의 대우를 받게 되었다.

국내 광고가 명화를 차용한 첫 사례는 럭키 유니나 청포샴푸 광고(1977년)다. “천년을 간직해온 자연의 향기”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있고, 단옷날 그네를 타고 냇물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여인들을 그린 신윤복의 ‘단오풍정’ 옆에 초록색 패키지의 청포샴푸가 놓여있었다. LG전자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 2008년부터 앙리 마티스,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명화를 활용한 광고를 실시했다. 마티스 편 ‘사랑해요 LG’광고는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을 받았고, 고흐 편은 아시아태평양광고제의 은상을 받았다. 그 후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을 활용한 3D TV 광고,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차용한 LG 유플러스 광고 등을 제작하는 등 꾸준히 아트 광고를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광고에 미술작품을 차용하는 이유가 뭘까? LG가 명화차용 광고를 제작하는 이유는 “생활 속에 LG가 많아진다는 것은 생활이 예술이 된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압솔루트 보드카도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의 획득을 노렸다. 다이아몬드 전문기업인 드비어스도 같은 이유로 오래전부터 명화 광고를 했고, 스페인의 엘 코르테 잉글레스 백화점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패러디하여 “패션이 예술이 되는 곳”이라는 광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명화는 작가의 명성, 작품의 희소성(그에 따른 높은 가격), 그리고 구매자의 높은 사회적 지위가 대변하는 ‘프레스티지’이미지로 인해 제품의 품격을 자연스레 높여준다.

명화의 럭셔리 후광효과 차용

하지만 럭셔리 후광효과가 명화 차용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명화를 패러디하거나 변형하는 광고들은 작품의 맥락(context)을 제품의 사용상황(usage occasion)과 연결시키거나 반전의 유머코드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 노키아는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이란 광고를 하면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아담의 창조’이미지를 활용했다. 태초의 교감을 현대인의 소통에 끌어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등장시킨 콜게이트 치약 광고는 “가식적인 미소를 버리고 활짝 웃어보라(Smile Big)”고 말한다. 이를 드러내고 웃지 못하는 모나리자의 숨은 고민을 콜게이트 치약이 해결해 주겠다고 하니 광고를 보는 순간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모나리자의 헤어스타일을 아주 청순하게 만들어 준 비달 싸순 헤어드라이기로부터 컴퓨터 설치가 너무 쉬워서 모나리자 스타일의 미소가 절로 나오게 되는 게이트웨이 컴퓨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나리자를 활용한 광고는 끝도 없이 많다. 다빈치의 또 다른 작품 ‘최후의 만찬’도 자주 차용되는 소재인데,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보니 매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의 연출, 기발한 메시지의 전달보다 더 중요한 명화 광고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이른바 ‘소프트셀 어프로치(soft sell approach)’다. 굳이 번역하자면 ‘부드럽게 다가가는 판매전략’이라고 할까? 가격할인, 보너스, 스페셜 판촉과 같은 ‘하드셀 어프로치(hard sell approach)’에 비해 소프트셀 어프로치는 고객의 자존감과 본질적 욕망을 자극하는 은밀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광고에 사용된 미술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충분히 높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자각하게 되어 쿠폰이나 세일에 덜 민감해지기까지 한다. 예술 작품이 부리는 마법이다.

이른바 ‘광고의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소비자들은 온갖 광고를 피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러나 잠시 명화를 감상하며 작가의 (혹은 광고주의) 숨은 뜻을 찾아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지하철 문 옆에 붙은 광고도 충분히 눈길을 줄만하다. 광고가 명화를 품으면 최대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고객의 마음을 부드럽게 끌어당길 수 있다. ●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아트 마케팅·엔터테인먼트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경영트렌드와 마케팅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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