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기업할 맛이 싹 가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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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조의 경영참여 수준이 순식간에 높아지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은 과거와는 차원이 달라질 전망이다.

예컨대 노조의 요구에 밀려 경영참여를 인정해준 기업은 인사는 물론 해외투자와 합작사업까지 노조가 동의를 해주지 않으면 추진하기 어렵게 된다.

재계는 "이제 칼자루는 노조가 쥐고 있다. 기업 할 맛이 가셨다"는 반응들이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참여는 투명경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경영참여의 수준을 더 끌어올리려는 태세다.

노조의 경영참여가 빠르게 확산되고 그 수준도 높아진 데는 무엇보다 현대자동차 노사의 합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노동계에서 맏형 역할을 해 왔다. 금속노조가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 근무제를 산별교섭을 통해 이끌어낼 때도 "세부사항은 현대차의 합의사항을 따른다"는 조항을 넣었을 정도다.

현대차의 하청업체가 수백개에 달하므로 현대차 노사의 움직임은 하청업체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차 노조가 움직이면 연쇄적으로 타 노조들이 한 방향으로 쏠리게 된다.

여기에다 금속노조는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 체제를 관철시켰다. 이는 현대차 노사의 합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 주5일 근무나 노조의 경영참여를 한꺼번에 전 지회조직으로 확산시킨 기폭제가 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동응 상무는 "걱정했던 산별교섭의 폐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별노조가 사업장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등 거대 강성 노조에 대항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한 이런 폐해는 갈수록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노조의 경영참여가 문서상의 참여에 그칠지, 구속력 있는 참여가 될지는 향후 노사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협력적 노사관계가 형성되고 회사의 경영사정이 괜찮을 경우 단체협약상 경영참여 조항은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영사정이 악화되거나 대립적 노사관계가 지속되면 노조의 경영참여를 담은 단체협약은 자칫 종이쪽지로 전락할 수 있다. 사측이 단협 내용을 무시하고 고유의 경영권을 행사할 경우 노조 측은 경영참여에 대한 법적 효력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법부는 "경영권은 사용자의 고유권한"이라는 판결을 내려 왔다.

이를 두고 법조계는 "강성 노조에 밀려 사측이 어쩔 수 없이 들어준 단체협약에 대해 제약을 두는 것"으로 해석한다.

노사 양측이 '법대로'하자며 막판까지 대립할 경우 노조의 경영참여를 인정한 단협은 사장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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