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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혼자 가면 더 좋은 브런치 카페 '카페 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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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기다란 커뮤니티 테이블과 2~4인용 좌석들이 놓인 실내. 벽면과 천장은 신희봉 사장이 만든 피규어들로 꾸며져 있다. 김성룡 기자

기다란 커뮤니티 테이블과 2~4인용 좌석들이 놓인 실내. 벽면과 천장은 신희봉 사장이 만든 피규어들로 꾸며져 있다. 김성룡 기자

 약속과 약속 사이에 시간이 뜨면 뭔가 애매해진다. 집 밖에 나오면 고생이라고 마음 편히 가 있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대 근처에 갈 때면 안심이 된다. ‘카페 봉’이 있기 때문이다. 두터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햇살이 비치는 아담한 공간 속에 질서 있게 자리 잡은 익숙한 테이블과 책꽂이·화분·메뉴판이 눈에 띈다. 이 모두가 친숙한 풍경이지만 ‘카페 봉’에서 제일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역시 운영자 신희봉 사장의 얼굴이다. 그의 이름 끝 글자를 따서 지은 이 카페 안에서 사람들은 그를 ‘봉 사장’이라고 부른다. 처음 방문했던 날부터 약간 까칠해 보이지만 왠지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갓 구운 프렌치토스트에 커피 한 잔, 수제 잼은 덤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맛과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신희봉 사장. 김성룡 기자

몇 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맛과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신희봉 사장. 김성룡 기자

 카페주인 신희봉 사장은 국내 굴지의 금융회사를 다니다가 어느 날 투자에서 개인이 기업을 이길 수 없다는 회의감이 들어 직장을 그만 두고 카페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제일 염두에 둔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일본을 여행해보면 몇 년 뒤에 가도 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반해 대한민국의 음식점은 너무 빨리 바뀐다고 느낀 것이다.

. 김성룡 기자

. 김성룡 기자

햄버거 브런치 세트. 김성룡 기자

햄버거 브런치 세트. 김성룡 기자

치아바타 프렌치 토스트. 김성룡 기자

치아바타 프렌치 토스트. 김성룡 기자

 덕분에 프렌치토스트, 팬케이크, 오믈렛, 햄버거, 파니니, 샌드위치, 불고기 밥, 스팸 밥까지 ‘카페 봉’의 주 메뉴는 다들 집에서 먹을 법한 편안한 느낌의 음식들이다. 당연히 이 음식들은 항상 일관성 있게 맛있으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봉 사장 본인도 매일 하나씩 여러 메뉴를 돌아가며 먹어 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기는 팁을 개발하기도 한다. 가령 “바나나슬라이스를 팬케이크에 올려 먹으면 식감이 더 촉촉하다”, “팬케이크 크기와 똑같게 만든 달걀프라이를 팬케이크 위에 올려먹으면 더 맛있다” 등등. 그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해 보면 더 맛있고 특히 먹는 재미가 있다.
 물론 봉 사장의 1일 1메뉴 시식의 목적이 그게 다는 아니다. 식후 느낌은 편안한지, 포만감이 만족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주의를 기울여 음식을 맛보기 때문이다. 혹여 프렌치토스트에 입힌 계란 맛이라도 달라질까봐 재료의 구매와 보관, 조리법에 일일이 세심한 매뉴얼을 만들고 준수한다.
 다른 곳과 달리 이 곳에선 프렌치토스트에 치아바타(밀가루에 이스트·소금·물 정도만 넣고 반죽하여 만든 이탈리아 빵)를 사용하는데 계란 두 개와 우유, 생크림을 촉촉하게 머금어 일반적인 식빵보다 식감이 찰진 것이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여기에 메이플 시럽, 그리고 다양성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매일 직접 만드는 과일 잼 가운데 하나를 바꿔가며 곁들인다. 어제는 오렌지 마멀레이드였다면 오늘은 망고 잼, 이런 식이다. 대량으로 유통되는 잼처럼 강렬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이 코와 혀를 간질인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나는 나만의 프렌치토스트를 먹는 법이 있다. 두 조각에는 시럽을 뿌리고, 두 조각에는 잼을, 나머지 조각에는 시럽과 잼을 올려 각각을 비교하며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이다.

한쪽 벽면에는 매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수제 잼들이 전시돼 있다. 김성룡 기자

한쪽 벽면에는 매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수제 잼들이 전시돼 있다. 김성룡 기자

 커피 한 잔을 비우며 조금 더 기다리면 주인장 내외가 잼을 만드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점심과 저녁 사이 카페가 조금 한가해지면 부부는 부지런히 잼을 만든다. 딸기·라즈베리·블루베리·파인애플 같은 과일 잼도 있지만 초콜릿 잼 같은 것도 있다. 카페 봉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밀크 잼과 얼그레이 잼이다. 진한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면서 책을 조금 읽거나 원고를 적다가 간간히 잼 만드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면 갑자기 내 삶이 더 여유로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홍대 부근에서 약속이 있으면 일부러 일찍 출발해서 이곳에 들르는 이유다. 약속과 약속 사이 뜨는 시간을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으로 만드는 비결이다.
 나는 잘 설계된 공간 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끼는 사람이다. ‘카페 봉’은 자영업자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지만 대형 체인점 카페 못지않은 체계를 갖췄다. ‘별다방’이 커뮤니티 테이블(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길고 커다란 테이블)을 놓기 훨씬 전부터 나는 ‘카페 봉’ 입구 쪽에 주인장이 직접 설계해서 만든 기다란 공용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해있었다. 고민과 궁리 속에 만들어진 공간이 주는 편안함은 정성껏 준비한 음식 맛을 배가시켜준다.
 주인장 내외가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물어봤다. 봉 사장은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확실히 지원을 받는다”고 답했다. 리코타 치즈는 본인이 직접 만들지만, 치아바타는 ‘카페 봉’만의 레시피에 따라 구워진 것을 외부에서 공급받고, 커피 원두는 봉 사장 본인이 자전거로 2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거의 모든 로스터리 커피를 마셔보고 직접 골랐다. 원두는 로스팅 후 3일~5일 안에 소비될 수 있는 용량만큼만 구입해서 쓴다. 샐러드의 채소는 로메인·적근대·비타민·치커리·새싹채소들을 중심으로 쓰고, 무르고 갈변하기 쉬운 양상추는 없이 간다. 재료는 미리미리 소분해두어 갑자기 주문이 몰려도 제때 내어놓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곳의 메뉴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먹어봤지만, 사실 매주 한 번씩 방문해서 똑같은 메뉴를 맛보는 게 진정한 재미다. 실제로 ‘카페 봉’에는 매번 똑같은 음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이 많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십중팔구 프렌치토스트를 고르고 늘 카페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맛보며, 늘 한결같은 사람들과 함께 느끼는 이 편안함이 모쪼록 더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카페 봉
 주소: 서울 마포구 서교동 451-3(동교로17길 28 온세빌딩)
전화번호: 02-3144-8745
영업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11시, 주말 오전 11시~오후 11시, 월요일 휴무
주차: 가능
메뉴: 브런치 세트 1만2000원, 스팸밥·불고기밥 등 덮밥류 8500원, 샌드위치·파니니 7500~8500원, 샐러드 9000원~1만2000원
드링크: 커피 4500~6000원, 차 3500~5000원, 주스 5000~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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