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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몬 밑거름 된 책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2호 33면

공감共感

지난 한달 간, 틈이 나는대로 포켓몬고를 열심히했다. 지금까지 잡은 포켓몬은 200여 종. 만렙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버블버블과 테트리스 이후로는 게임에 손을 댄 적이 없는 내겐 이례적인 일이다. 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은 증강현실을 게임에 적용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증강현실은 현실 위에 컨텐츠를 덧대어 가상과 현실을 섞는 방식으로 새로운 경험을 준다. 자동차의 헤드업 디스플레이 같은 장치들을 통해서 이미 실생활에 들어오기도 했다. 익숙한 현실 위에 정보나 재미를 더하는 이 방식은 앞으로도 활용의 범위가 계속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능성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포켓몬고 게임을 하게 된 멋진 이유는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포켓몬고의 캐릭터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것이 이 게임을 하게 된 더 큰 동기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어렸을 때, 포켓몬의 세계에 함께 입문해서 만화책과 만화 영화를 통해서 늘 만나던 녀석들이다. 포켓몬 전국도감을 동물도감·식물도감 옆에 함께 놓고 익혔고 각종 포켓몬의 피규어를 사 모았다. 일본에 갈일이라도 있으면, 실제로는 포켓몬 종합쇼핑센터일 뿐인 포켓몬 센터를 방문해서 희귀템을 구해 돌아왔다. 모두다 아이 소유가 되었지만, 곁에 두고 나도 즐겼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이 어린이들이 선물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는 날이 가까워오면 희귀 포켓몬 피규어를 갖고 싶어하는 녀석을 대신해서 용산전자상가를 누볐다.

설화·신화·과학이 담긴 책 #포켓몬 스토리 만들어 낸 원동력 #책이 죽으면 게임 만들 바탕 사라져

 포켓몬고는 세상에 널린 포켓몬들을 만나면 몬스터볼을 던져서 잡는 게임이다. 실제로는 없는 놈들이지만, 휴대폰 카메라 화면을 넘어 보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 나온다. 수백종이 넘는 포켓몬들은 코일과 같은 인공물에서 유래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세상에 존재하는 동물, 식물들에서 모양과 성질을 가져 왔다.

각각의 포켓몬들은 제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뭐, 다 만들어낸 이야기이니 자연적 사실이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할 필요는 전혀 없다. 포켓몬 도감을 찬찬히 읽어보면 대체로 유래한 동식물, 사물의 성질에서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엉뚱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엉뚱한 이야기의 근원은 설화나 신화 같은 것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고 흘러다니는 소문이나 유행을 포착한 것들도 있다.

 사람의 마음만큼 다양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만나는 장소와 시간까지 얹히니 경우의 수는 늘어나고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각각의 포켓몬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의 세기가 있고, 그 세기를 강화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체마다 그 한계가 달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 주어진 값을 넘을 수 없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포켓몬을 강화하면서 우연히 가진 능력과 힘이 센 포켓몬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계속 몬스터볼을 던지게 만든다. 몬스터볼을 던져 잡아 관계를 맺게 된 포켓몬과 게임의 플레이어는 특별한 관계를 맺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감정적인 애착이 발생하기도 하고 원하는 포켓몬을 키우기 위해서 별의 모래를 모으고 사탕을 모으면서 전략적인 선택을 계속 해야 한다.

물론, 이 세계가 짜여진 각본 속에 있는 조작된 것이라는 것은 금방 드러난다. 가끔은 버그가 생겨서 종료가 되어버린다. 재벌그룹 계열의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마다 게임의 도구를 제공하는 포켓스탑이 일제히 설치된 것도 이 게임이 돈을 어떻게 벌고 있는지 드러내놓고 알려준다. 하지만, 여기서 개별 포켓몬들의 사연을 읽고, 그들의 이야기에서 공감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만들고 그 대상을 성장시키는 것은 충분히 해볼만한 경험이다. 잘 키운 포켓몬을 출전시켜 체육관에서 대결을 벌이는 것도 짜릿하다. 하지만, 그것만가지고는 부족하다.

포켓몬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두께가 얇아서 거북이를 닮은 꼬북이의 얘기는 거북이의 얘기만큼 풍부하지 않다. 쥐를 닮은 피카추를 통해 쥐의 생태를 알 수도 없다. 이 지점에서 책을 통해 더 넓은 지식을 만나고 새로운 탐험을 시작해야 한다. 포켓몬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설화와 신화, 그리고 과학을 담은 수많은 책들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포켓몬 게임을 지나 다시 책으로 나가는 길이 열려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팔려 게임 회사에서 게임 안에 아이들을 가두는 장치들을 자꾸 만드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한 일이다. 정부가 산업적인 효과가 크다고 믿어 책이 아닌 게임에만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책이 죽으면 게임을 만들어낼 바탕도 없어지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수박 겉만 핥다가 알맹이 맛은 보지도 못하고 굶주릴 수밖에 없다. 게임과 책 사이를 열어야 한다.

주일우

문학과 지성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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