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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용납될 수 없는 법 위배 행위” 읽자 … 대통령 측 이중환, 메모 멈추고 머리 감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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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재난 상황이 발생했다고 해서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등 구체적 의무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초반부엔 국회 측 당황한 기색 역력 #최순실 개입 나오면서 분위기 반전

10일 오전 11시11분쯤 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선고 요지 중 이 대목을 읽을 때 국회 소추위원 측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순간이었다. 국회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을 감고 있던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은 눈을 뜨고 자세를 고쳤다. 황정근 변호사도 고개를 숙였다.

반전이 일어난 건 2분 뒤 최순실씨 관련 내용이 나오면서였다. 이 권한대행은 박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밀문서 유출과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등 최씨의 사익 추구 관여를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 측 김평우 변호사는 깍지 낀 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한 일반인 방청객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 권한대행이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였다”고 하자 이중환 변호사는 메모를 하던 손을 멈추고 머리를 감쌌다. 국회 측 변호사들은 귀엣말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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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낭독된 박 전 대통령 탄핵 선고 요지는 반전을 거듭했다. 이 권한대행은 ‘그러나’와 ‘그런데’를 각각 네 번씩 언급했다. 이 권한대행의 한마디 한마디에 대리인들은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떨궜다. 재판관들은 재판 내내 침착한 모습이었다. 별 표정도 없었다. 선고 시작 직후 이진성 재판관은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 심판정의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천천히 둘러봤다.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법정 뒤쪽 벽만 응시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선고된 시각은 오전 11시21분. 헌법 제65조는 탄핵 결정 선고에 따라 파면의 법적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시각은 결정문에도 기록됐다.

이 권한대행의 목소리는 평소 변론 때처럼 차분했다. 주문이 선고된 뒤 법정 안은 숙연했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졌지만 방청객석에도 동요가 없었다. 8명의 재판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법정을 나섰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떴다. 재판 시작 전에 짧게 기도를 했던 서석구 변호사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가져온 태극기는 가방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조금 더 남아 서로 “고생했다”고 격려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법정의 104개 좌석 중 24석은 일반인석이었다. 당첨 경쟁률은 796대 1이었다. 방청객 김혜성(26)씨는 “헌재가 국민들의 뜻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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