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정권말기에 사면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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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레이건」미대통령이 임기만료를 15개월 남짓 앞두고 「화려한 치적」하나라도 남기려고 애쓰고 있으나 하나도 성사될 가능성 없이 풀기 어려운 난제만 계속 경쳐 사중고·오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2일에는 대공황을 능가하는 증시파동의 원인이 정부의 재정적자 삭감능력부족에 있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레이건」대통령은 23일의 기자회견에서 「레이거노믹스」의 기조적인 적자예산 고집에서 후퇴, 적자삭감안 협상을 의회와 벌이겠다고 큰 후퇴를 했다.
이는 일견 경제정책에 관한 전략변화에 불과한 것 같지만 실은 작년11월 상원선거에서의 공화당 패배, 이란-콘트라사건, 「보크」대법원판사임명비준좌절, 페르시아만에서의 좌절, 그리고 23일 모스크바 미소외상회담의 중거리핵무기협상결렬등 계속되어온 정치적 어려움 끝에 겪는 추가적 좌절이란 점에서 임기 말의 통치력 약화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하고 있다.
무역및 재정 양대적자는 당사국 미국뿐 아니라 그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는 세계경제질서를 흔들어온 난제가 돼왔다.
이날 회견에서 「레이건」대통령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87회계연도가 끝난 9월30일 현재 재정적자는 1천4백80억달러에 이른다. 작년도의 2천2백억달러에 비하면 7백30억달러가 감소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의 환율조정등 피나는 노력에 비추어 볼때 매우 실망스런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재정적자 배경은 복합적이다. 그 원인이 모두 「레이건」행정부의 정책 탓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국방비를 비롯한 예산증가를 계속하면서도 조세 인상을 거부해온 「레이건」행정부의 정책이 요즘 주원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경제에 미치는 재정적자의 폐해를 보다못해 의회는 2년전 「그램·러드먼·홀링즈」안을 의결, 자동적으로 행정부가 해마다 일정폭의 예산삭감을 의무적으로 실천해나가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으나 그동안 실행되지 못하다가 오는 11월20일부터 유효하게 돼있다.
88회계연도 삭감폭은 2백30억달러. 절반은 국방비에서, 나머지 반은 세출에서 줄이도록 되어있다.
현단계로서는 「레이건」대통령이 자신의 입으로 조세인상을 꺼내지 못하고 있으나 재정적자 완화수단으로써 이 길밖에 없는 것으로 미국조야에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아울러 미행정부는 무역적자해결을 위해 달러화 인하이외에 동원할 수있는 수단은 모두 검토한다는 적극적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러졌다. 그 일환으로 이제는 경쟁력을 갖춘 한국·대만·싱가포르에 대해 관세면제혜택(GSP)을 졸업시키자는 방안이 급박하게 검토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분위기는 종합무역법안심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하원과 상원에서 각기 서로 다른 법안을 의결,「레이건」대통령이 단일안이 확정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달라진 분위기에 따라 그와 같은 강경책을 가능케 해줄 백악관의 위력은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워싱턴=한남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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