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여한 국제 사진 페스티벌>
- 올렉 도우, 토마스 드보, 르네뜨 뉴엘,
김미루, 가오 브라더스, 커스티 미첼, 성남훈,
그리고 신현림
봄볕은 내 몸 위로 부드럽게 주황빛으로 너울거렸다. 햇빛으로 사랑받는 것 같아 따스했다. 그리고 인터뷰하러 온 기자의 질문도 기분 좋았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내게 물어왔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누가 묻지 않으면 생각지 못할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한두 개가 아닌데, 무엇부터 말해야 하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었다.
“최근 가장 뿌듯했던 일은 제 시 2편이 작곡된 노래를 듣고 잠을 못 잤던 일과, 내가 쓴 책을 독자들이 찾고, 페이스북에서 귀한 댓글을 남겨주실 때요. 그리고 만 삼 년 전 울산사진페스티벌에 한국 대표 작가로 초대받았을 때 솔직히 통쾌했죠. 통섭의 개념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나쁜 고정관념 하나를 넘었다는 점, 꾸준히 노력하면 이루어지는구나, 실감하며 아주 흐뭇했어요.“
그런 공정한 기획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요즘 같은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그저 마을 회관을 만들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와 관계된 사람들끼리 소통하고 놀다 가는 게 인생인가? 질문한다. 사진 쪽, 시 쪽 등 어디든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작품만 좋으면 되는 서구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터부도 많고 경계 담장이나, 인맥, 학맥 등에 휘둘린다.
두 가지 작업을 함께 한다는 건 운명이다. 오랜 세월 힘들었으나, 처음 예감대로 통섭과 남다른 상상력이어야만 하는 미래가 펼쳐져, 내심 반갑기도 하다.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 작품이 좋으면 된다. 여전히 편견이 많고, 제멋대로인 세상에서 오직 우직하게 창작 밭을 가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나의 뜻을 대신할 프란시스 잠의 시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처럼.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
나무통에 우유를 부어 담고
뾰족하고 뻣뻣한 밀 이삭을 따는 일
오리나무 그늘 아래서 암소를 지키고
숲속에서 자작나무껍질을 벗기는 일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서 버들잎으로 바구니를 짜는 일
침침한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행복해하는 아이들 곁에서
낡아빠진 신발을 깁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덜거덕거리며 베를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담고
텃밭에 배추와 마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러고는 따스한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
시간이 갈수록 위 시가 맘에 든다. 많이 알려진 시이기도 하고, 도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상상으로나마 전원생활을 맛보고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람의 위대한 일이란 자신이 맡은 일을 그저 우직하게 해낼 뿐이란 내용이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 말에 인터뷰 온 후배가 다음 말을 하였다. 그 꾸준함이 별거 아닌듯해도 굉장히 어렵단 사실을 30년 만에 알았다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꾸준한 열정이 곧 능력이요 천재성 같다니까요.”
“뭐 천재성이나 열정보다도 헝그리 정신 같아. 지독한 실패, 상처가 먼 미래로 이끄는 힘이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말하면서 지독한 실패나 죽음에 가까운 상처에 지지 않고 살아있음이 신기했다. 또한, 앞으로 그보다 어떤 독한 실패도 못 만날 거란 생각이다. 그러나 저러나 당시 페스티벌에 함께 걸린 러시아의 젊은 작가 올렉 도우의 작품을 바라보면 내 체험과는 달리 그는 지독한 실패나 상처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국가의 문화 수준이 작가를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수업시간에 박영택 선생님의 러시아 기행 체험담이 기억난다. 러시아인들의 문화사랑은 대단해서, 체홉의 연극을 보기 위해 노동자와 그 가족들까지 무대 앞을 가득 메운다는 이야기가 몹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런 문화 사랑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아닐까. 물론 사회주의 국가라 당연히 우리나라와 다르긴 하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70~80%란 말이 기억 속에서 물결친다. 러시아인들의 문화 사랑을 떠올리며 올렉 도우의 작품을 마주하였다. 너도나도 디지털 작업이 많다 보니 뻔하고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올렉 도우의 초상에는 빨려드는 나를 느꼈다. 섬뜩한 존재감 표현은 디지털 사진술의 극치였다.
나는 상반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 매력적인 것과 관심 없는 것, 아름다움과 추함을 통해 아름다운 강력한 이미지 창조가 최종 목적이다.” 이런 분명한 개념이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가들이 많아서 간단히 핵심만 짚고 가야겠다.
최근 시리아 난민들의 행렬을 카메라에 담는 등 행동하는 사진가로서 다큐의 힘을 보여주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사진들은 2007년 삼성중공업 유조선 충돌로 충남 태안군에 엄청난 기름유출 현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검은 눈물>로 국민의 고통을 함께할 정부는 있는가, 물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의 괴로움을 함께 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음이 참 부끄럽고 슬프다.
요즘은 문 닫은 가게가 자주 눈에 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절인 거 같다. 이 어둠 속에 타오르는 등불은 희망의 등불이다. 저마다 희망의 등불을 켜 들고 산다. 등불들마다 다른 사연이 있고, 다른 꿈을 갖겠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을 느낀다.
사과밭이 지구의 상징이었다면, 그 지구를 돌며 찍은 것이 <사과여행>이다. 또한 <사과, 날다>전을 열었다. 만물은 한 몸이란 동양적 생태적 세계관은 사람과 자연을 나누지 않는다. 우리는 자연과 내면적으로 깊이 이어져 있다.
첫 전시 때부터 이 같은 철학 개념과 기이한 인생의 맥 속에서 사진을 계속 찍어왔다. 그 사과밭에서 나는 시를 많이 쓰게 되었다, 그중 <사과밭에서 온 불빛>을 흐르는 시간 위에 놓아두겠다.
사과밭에서 온 불빛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어
월말, 연말, 종말이 온다는 한계도 생각 못 할 때
여기에 내가 있기에 저기는 갈 수 없고
불빛 하나둘을 가지면 다른 불빛을 포기해야 함을 알았네
애를 가졌고 혼자 키워야 했기에
포기한 일과 포기한 만남들이 늘어남을 받아들였어
말하면 가뭇없이 사라지니까 다 말할 수도 없어
이제 상복 입은 나날을 애도하고
시커먼 눈발이 쏟아지도록
아픈 시간 앞에 묵념할 수 있네
나는 천천히 흘러가겠네
괴로워야 할 시간은 충분하고
아파야 할 시간이 허다하고
사랑해야 할 시간이 아직도 많으니
* 그동안 함께 해주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신현림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