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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워킹맘 다이어리

저출산 숫자 읽는 법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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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이노베이션랩 기자

박수련이노베이션랩 기자

“남편이 집안일 많이 도와주시죠?”

워킹맘이라고 밝히고 나면 종종 받는 질문. “아니요. 전혀요”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네, 많이 도와줘요”라며 자상한 남편을 둔 커리어우먼 흉내도 껄끄럽다. 여성에게 집안일은 당연한 일, 남성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란 전제에서 출발한 질문이어서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가사노동도 어느 한 배우자가 도와주고 말고 하며 선심 쓸 일은 아니잖나.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바빠도 집안일 도우려고 노력한다”며 우쭐해하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의 인터뷰는 호감도를 팍팍 끌어내린다.

같은 이유로 최근 어느 결혼식에서 들었던 “바빠도 아침밥 잘 챙겨주는 아내의 사랑”을 강조한 주례사에도 기겁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저런 소리를 하나 싶었다. 맞벌이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순간, ‘여성의 (집 밖의) 일’은 사랑을 테스트하는 갈등 요인이 된다. 하지만 대놓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8첩 반상 아침밥에 대한 로망을 가진 남성이 많은 것도 사실. 우리 집 남편도 가끔씩 들키는 로망인 것을 알기에 씁쓸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집안일까진 어떻게 해보더라도 육아는 부부의 철저한 분담으로 쉽게 해결이 안 된다. 한국의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가족 돌봄 포함) 시간은 3시간 이상(194분)이지만 남성은 하루 40분(통계청·2014년)이다. 엄마가 된 여성이 육아가 아닌 ‘내 일’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라치면 갈등은 더 심해진다.

최근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출산·육아로 일을 그만둔 여성이 다시 취업하려면 평균 8년4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대접은 이전 같지 않다. 재취업 후 임금(월 165만6000원)은 계속 직장을 다닌 여성보다 월 76만원 이상 적다. 출산, 아니 어쩌면 결혼 자체를 안 하겠다는 선언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 숫자는 말한다.

얼마 전 ‘고(高)스펙 여성들 눈을 낮출 문화 콘텐트를 개발해 은밀하게 음모 수준으로 홍보하자’ ‘고스펙 청년들은 취업 불이익을 주자’는 걸 저출산 대책으로 발표한 국책연구원은 저런 숫자들부터 다시 보시라. 남녀 임금 격차가 36%나 나는 나라라면, 워킹대디인 직원들이 ‘애가 아프니 부서 회식 못 간다’ ‘올해 육아휴직 쓰겠다’고 말할 수 없다면, 가족은 포기하고 밤낮으로 일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다면… 고스펙 청년들에게 그 어떤 엄청난 불이익을 줘도 비혼과 출산파업을 막을 수 없다. 10년간 80조원을 쓰고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 못 했다면 이젠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남녀 가사분담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해야 한다. 이게 워킹맘·워킹대디들이 보는 올해 대선의 포인트다.

박수련 이노베이션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