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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동자신’을 직접 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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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대 동자신 영접하고 왔어요숙대 동자신 영접 후기동자신 영접한 날

화장품 매장 안에 그의 상담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줄을 서있다. 고객 한 명당 상담 시간은 40분을 훌쩍 넘긴다. 맨 오른쪽 남성이 선찬래씨다.  윤경희 기자

화장품 매장 안에 그의 상담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줄을 서있다.고객 한 명당 상담 시간은 40분을 훌쩍 넘긴다.맨 오른쪽 남성이 선찬래씨다. 윤경희 기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이런 제목의 게시물이 수없이 많이 올라와있다. 여기서 말하는 ‘동자신’이란 정말 점쟁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선찬래(36)씨 이야기다. 마치 점쟁이처럼 고객 얼굴을 슥 보기만해도 그 사람의 피부 고민부터 어머니의 피부 타입, 가지고 있는 화장품 종류, 직업까지 척척 맞춰 그를 찾아왔던 사람들이 동자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동자’는 하얗고 애기같은 외모 때문에 붙었다.)
지금 선씨는 스킨푸드 숙대점의 점주지만 2015년까지만해도 반포동 고속버스터미널(고터) 지하 상가에 있던 매장에서 직원으로 일했다. 이미 그때부터 ‘고터 스킨푸드 동자신’으로 통했다. 선씨와 상담한 사람들은 자신의 피부 고민을 척척 집어내는 모습에 놀라 인터넷에 관련 이야기를 올렸고,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지방에서까지 찾아오면서 점점 유명해졌다.
그를 만난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영접 후기’를 보면 감탄할만하다. “손님 스킨 로션 잘 안 쓰시고 크림만 쓰시죠?” “어릴 때 여드름이나 트러블이 전혀 없으셨죠?” “어머니도 잡티나 다른 문제 없이 좋은 피부셔서 화장품에 관심이 하나도 없으셨네요.” “손님은 집에 재생크림, 수분크림이 많으실테니 굳이 크림은 따로 안 사도 되요. ” 등의 얘기를 고객의 얼굴을 2~3초 정도 쳐다보는 것만으로 풀어낸단다. 심지어는 “지금 사무실 책상에 컴퓨터 살짝 높은 것 같으니 의자 살짝 올리세요. 의자 올리면 발 뜨니까 발받침 해주시고요”란 얘기까지 술술 풀어놔 ‘놀랍다’는 반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네티즌들은 ‘그가 고속터미널 매장에서 이달 몇 일까지 일한다’ ‘동자신이 숙대입구로 이적했다’ ‘오후 1시30분부터 출근하니 동자신을 만나려면 그 이후에 가야한다’ 등 그에 대한 소식을 블로그에 올려 공유한다. 심지어는 “어떤 화장품을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사람에겐 “숙대 동자신’을 찾아가 보라”고 권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그가 한 고객당 할애하는 상담시간은 최하 30분에서 40분 이상. 자신의 피부 타입과 고민, 몸 상태까지 콕콕 집어내니 내로라하는 고가 화장품을 많이 써본 사람들도 그의 조언에 따라 화장품을 사온단다.
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에 3월 3일 직접 화장품 매장을 찾아 그를 만났다.
오후 6시 경에 도착한 매장엔 다행히 손님이 별로 없었다. 온라인 후기에 '상담 손님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에 오래 기다릴 각오를 했는데 퇴근 전 시간대를 잘 맞춘 덕분이었다. 매장 카운터에 서 있는 신씨에게 ‘기초화장품 추천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잠시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객님은 얼굴에 올라온 열이 문제”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얼굴에 열이 많이 올라와 도돌도돌한 좁쌀 여드름이 나타나고 피부가 점점 더 건조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과거 피부과 전문의에게 받은 진단과 같았다.
기자라는 직업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평소 한 곳을 계속 바라보는 직업을 가진 것 같다”며 “움직이지 않고 한 곳을 오랜시간 응시하는 생활 습관때문에 눈의 움직임이 작아 시야가 좁다. 그로인해 눈 근육의 힘이 많이 떨어져 이마 근육으로 눈꺼풀을 올려 이마의 주름 관리가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오늘 피곤하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 게 고민일거다"라고 했는데 이는 최근 가장 신경 쓰이는 고민이었던 터라 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어둡게 변해 있는 눈 앞머리 부분 피부와 힘없는 눈꺼풀의 움직임을 보고 이를 맞췄다"고 했다. 눈 앞머리쪽 피부색이 변한 건 경미한 안구건조증으로 고인 눈물과 노폐물을 닦느라 자꾸 그 부위를 만졌기 때문인데 힘없는 눈꺼풀, 다크서클과 함께 피곤해 보이는 인상을 만든다는 얘기였다.
또 멀리서 바라 봤을 뿐인데도 “모발은 건성이지만 두피가 지성”이라며 그로 인해 최근 헤어라인에 생긴 여드름 증세도 알아봤다. 그가 내린 피부 처방은 민감한 피부에 맞는 알코올이 없는 스킨과 수분 에센스 사용. 또 ‘좋아 보이는 피부’를 만들기 위해 콧등ㆍ이마를 잇는 T존엔 1주일에 1번 정도 미온수로 각질제거를 하라고 권했다. 또 눈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눈 주변 혈자리 지압과 지성 두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샴푸를 지성용으로 바꾸길 추천했다. "체내 열, 땀을 빼내고 혈액 순환을 좋게 해줄 수 있는 운동과 반신욕을 꼭 했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체질 전반과 생활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피부 고민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을 제시해주니 믿음이 갈수밖에 없었다. 화장품을 반드시 사야한다는 강한 권유는 하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달라는 말에 "이것 이것 정도"라는 추천을 했을 뿐 선택은 본인이 하게 했다.
상담 시간은 약 40분 정도. 상담을 받는 동안 끊임없이 그와 상담이 가능한지 문의하는 전화가 왔다. 뒤로는 그의 상담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상담을 끝낼 무렵엔 5명의 여성이 줄을 섰다.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제품만 아는 걸로는 부족함을 느껴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선씨는 최근 한약재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혈자리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공부할수록 알아야할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며 “더 정확한 피부 지식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맞는 화장품을 추천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3초만에 직업까지 척척 맞추는 화장품 매장 직원 #잠깐 얼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피부 고민 다 맞춰 #매장엔 피부 진단 받으려는 여성들이 줄 서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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