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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영화 펀딩, 어디까지 해 봤니?

중앙일보

입력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란, 대중으로부터 조달하는 자금을 말한다. 그간 영화계에선 주로 제작 여건이 어려운 영화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소정의 금액을 후원받고 엔드 크레딧에 이름을 새겨 주거나, 영화 굿즈·시사회 초대 등으로 보답(Reward·리워드)하는 형태를 뜻했다. 요즘은 다르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법이 시행되면서 일반 개인도 기부나 후원뿐 아니라, 온라인으로 손쉽게 특정 영화에 대한 수익형 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도 100% 투자 원금을 보장해 주는 투자 상품까지 나타났다. 해외에서 개봉했거나 국내 영화제에서 완성도를 검증받은 수입 영화들도 크라우드 펀딩에 가세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펀딩 참여가 나날이 활성화되면서 영화계는 ‘관객이 곧 투자자’인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 1년간 급변해 온 국내 영화 크라우드 펀딩의 지형도를 살펴봤다.

'눈길'(사진=엣나인 필름)

'눈길'(사진=엣나인 필름)

입소문 노리는 크라우드 펀딩

회사원 M씨는 얼마 전 관심 있는 영화 제작에 참여도 하고, 수익도 남기는 일석이조 투자에 성공했다.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에 참가한 ‘인천상륙작전’(2016, 이재한 감독)이 관객 704만 명을 넘어서며, 올해 2월 원금과 함께 25.6%(세전 이율)의 수익금이 지급된 것이다.

전문 투자자가 아닌 일반 개인이 온라인 중개 플랫폼을 통해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이하 투자형)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법이 지난 1월 시행 1주년을 맞았다. 그사이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영화계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독립·저예산 영화들이 제작·개봉에 드는 비용을 후원받기 위한 ‘리워드형 크라우드 펀딩’(이하 리워드형)이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마케팅 전략으로의 기능이 추가됐다. 대부분의 크라우드 펀딩 중개 사이트는 프로젝트 내용과 진행 상황을 투자자들에게 전달하고, 쌍방으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둔다. 이를 통해 해당 영화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전문성과 충성도를 높임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투자형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다.

투자 원금 보장하는 ‘나의 영화는.’

투자형은 영화사가 정한 모집 금액 내에서 선착순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영화의 흥행 성적에 따라 수익 혹은 손실을 배분하는 형태를 말한다. 투자금은 대개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되며, 수익·손실률은 관객 수에 따라 다르게 책정된다. 일반 개인 투자자들은 기업당 최대 200만원, 1년에 총 500만원까지 크라우드 펀딩에 투자할 수 있다. 리워드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이슈로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작품들이 큰 호응을 얻지만”(다음 스토리펀딩 김귀현 파트장), 흥행성을 염두에 두고 투자가 이뤄지기에 블록버스터나 스타 감독·배우가 참여한 외국영화의 인기도 높은 편이다.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박정우 감독)는 개봉 한 달 전인 지난해 11월 투자형을 오픈해, 영화 크라우드 펀딩 사상 최고액인 8억1000만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너의 이름은

너의 이름은

일본에서 관객 1700만 명을 모은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1월 4일 개봉,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해 12월 수입 영화 최초로 리워드형·투자형을 동시에 오픈해 초고속 ‘완판’을 기록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특별 초청한 상영회 티켓과 한정판 굿즈 등을 후원 금액에 따라 차등 지급한 리워드형은 30분 만에 매진됐다. 투자형 역시 개시 한 시간 만에 모집 금액 5000만원을 초과 달성했다. 추가 투자 문의가 쇄도하자, 모집 금액을 1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기존의 투자형은 영화 관객 수가 손익분기점에 미달할 시 투자자가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은 수입사 미디어캐슬이 투자 원금을 무조건 보장하는 회사채 발행 방식을 택했다. 관객 수가 손익분기점인 50만 명에 미달해도 투자 원금의 5% 이율을 약속했다. 관객 수 증가에 따라 추가 금리가 붙었다. 미디어캐슬 강상욱 이사는 “입소문 전략을 위해 감수할 만한 마케팅 비용이었다”고 했다. 결국 ‘너의 이름은.’의 누적 관객 수가 360만 명에 달하면서, 투자자들은 40%의 이율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원전 사고 영화 판도라

원전 사고 영화 판도라

보고 싶은 영화에 투자하는 시대

영화 '사일런스' [사진 메인타이틀 픽쳐스]

영화 '사일런스' [사진 메인타이틀 픽쳐스]

‘너의 이름은.’이 관심을 모은 후 ‘사일런스’(2월 28일 개봉,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등 원금을 보장하는 ‘홍보성’ 투자형 상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흥행 실패 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품들도, 흥행 성공 시 수익률이 원금 보장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여전히 인기다. 이 중 ‘눈길’(3월 1일 개봉, 이나정 감독)은 수익의 20%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를 돕는 시민단체에 기부하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2월 15일 개봉, 케네스 로너건 감독)는 일부 투자자들에게 시사회 초대권을 제공하는 결합형 상품으로 이목을 끌었다. 반면 ‘사냥’(2016, 이우철 감독) ‘걷기왕’(2016, 백승화 감독)처럼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해 투자 원금 손실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영화 '걷기왕'.

영화 '걷기왕'.

소셜 미디어로 인해 크라우드 펀딩이 더욱 활성화되면서 리워드형·기부형 크라우드 펀딩도 그 영향력을 더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다수 배급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경영난을 겪은 영화사 시네마달 후원 크라우드 펀딩은, 마감을 두 달 넘게 남긴 시점에서 목표액 1억원의 25% 이상을 달성했다. 최근 영화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높은 관심에 대해 중개 사이트 와디즈 금혜원 프로는 “관객은 더 이상 영화 시장이 ‘보여 주는’ 영화만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인베슈머(Invesumer·소비자가 투자자가 되는 현상) 시대가 열린 만큼, 한국 영화계의 다양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영화 크라우드 펀딩, 어디서 할까>

※사이트 | 주요 펀딩 영화·프로젝트

굿펀딩(goodfunding.net) | ‘26년’(2012, 조근현 감독) ‘또 하나의 약속’(2014, 김태윤 감독) ‘연평해전’(2015, 김학순 감독) ‘우리 손자 베스트’(2016, 김수현 감독)

다음 스토리펀딩(storyfunding.daum.net) |‘귀향’(2016, 조정래 감독) ‘자백’(2016, 최승호 감독) ‘7년:그들이 없는 언론’(1월 12일 개봉, 김진혁 감독) ‘재심’(2월 15일 개봉, 김태윤 감독),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펀딩 진행 중)

소셜펀치(socialfunch.org) | ‘나쁜 나라’(2015, 김진열 감독) ‘업사이드 다운’(2016, 김동빈 감독) ‘그림자들의 섬’(2016, 김정근 감독), 인디다큐페스티발2017(펀딩 진행 중)

오픈 트레이드(otrade.co) |‘맨체스터 바이 더 씨’(2월 15일 개봉, 케네스 로너건 감독) ‘골드’(3월 22일 개봉, 스티븐 개건 감독, 펀딩 진행 중)

와디즈(wadiz.kr) | ‘판도라’(2016, 박정우 감독) ‘너의 이름은.’(1월 4일 개봉, 신카이 마코토 감독) ‘눈길’(3월 1일 개봉, 이나정 감독) ‘사일런스’(2월 28일 개봉,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싱글라이더’(2월 22일 개봉, 이주영 감독, 펀딩 진행 중) ‘임권택 프로젝트’(가제, 정성일 감독, 펀딩 진행 중)

텀블벅(tumblbug.com) | ‘탐욕의 제국’(2014, 홍리경 감독) ‘고스트 메신저 극장판’(2014, 구봉회 감독) ‘416 프로젝트 “망각과 기억”’(2016, 416연대 미디어위원회)

펀딩21(funding21.com) | ‘그리고 싶은 것’(2013, 권효 감독) ‘카트’(2014, 부지영 감독) ‘하이큐!! 끝과 시작’(2016, 미츠나카 스스무 감독, 펀딩 진행 중)

IBK투자증권(crowd.ibks.com) | ‘인천상륙작전’(2016, 이재한 감독) ‘걷기왕’(2016, 백승화 감독)

글=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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