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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복고풍 거리와 공방·카페로 … 탈바꿈 중인 전국 홍등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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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전주 선미촌 빈집에서 열린 설치미술전에서 소보람(모자 쓴 여성) 작가가 김승수 전주시장 등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전주 선미촌 빈집에서 열린 설치미술전에서 소보람(모자 쓴 여성) 작가가 김승수 전주시장 등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전주시]

“이곳에 담긴 불편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전주, 업소 사들여 문화예술촌 조성 #파주 20포 마을엔 전통등 공방 거리 #춘천 ‘난초촌’은 택시기사 쉼터로 #“도심 살리고 지역 문화 풍성해져”

지난해 10월 5일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집창촌 한복판에 있는 빈집에서 열린 소보람(33·여) 작가의 설치미술전 개막식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소 작가는 전시 주제인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불편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전시장으로 쓰인 건물은 전주시가 ‘선미촌 문화 재생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들인 성매매 업소 건물이다. 전주시는 오는 2022년까지 68억원을 들여 이 일대 집창촌 건물을 문화·예술인의 작업실이나 전시장으로 꾸미는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엔 선미촌에서 16년간 성매매 영업을 하던 4층짜리 건물을 추가로 샀다.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 주제로 설치한 소보람 작가의 작품. [사진 전주시]

‘눈동자 넓이의 구멍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 주제로 설치한 소보람 작가의 작품. [사진 전주시]

전국의 ‘홍등가’가 문화예술촌 등 시민이 모이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주 선미촌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생긴 이곳은 전주 한옥마을에서 불과 800m 거리에 있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되면서 규모가 줄었지만 여전히 성매매 업소 29개가 영업 중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성매매 집결지는 23곳이다.

전주시는 지난해 환경부가 주관하는 ‘업사이클센터 설치 사업’에도 선정돼 국비와 시비 48억원을 들여 선미촌에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집창촌 건물을 공방과 전시·판매장, 교육·회의장, 카페 등으로 활용하는 사업이다. 오는 7월에는 아예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이 이 건물 1층에 이른바 ‘현장시청’ 사무실을 두고 활동할 예정이다. 집창촌 안에 거점 공간을 확보해 성매수자의 접근을 막고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보호와 직업 전환을 돕겠다는 취지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성매매 업소들을 강제로 몰아내기보다 예술의 힘으로 선미촌을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통등 거리’로 변신한 경기 파주 20포 마을. [사진 최정동 기자]

‘전통등 거리’로 변신한 경기 파주 20포 마을. [사진 최정동 기자]

수도권의 대표적인 집창촌인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대능리 ‘20포 마을’도 주민과 지자체가 손잡고 전통 문화예술촌으로 조성 중이다. 주민들은 2015년 8월부터 전통등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골목길 2.2㎞ 구간에는 벽화를 그리고 도로변엔 꽃밭을 만들었다. 빈 점포는 미술작가들에게 작업 공간과 전시장으로 내줄 예정이다. 파주시는 오는 10월까지 5억3000만원을 들여 이곳을 전통등 특화마을로 조성하기로 했다. 또 성매매 업소 80여 개가 성업 중인 파주읍 용주골 1㎞ 구간을 오는 2021년까지 창작 문화의 거리로 바꿀 계획이다.

강원 춘천시의 마지막 집창촌이었던 ‘난초촌’ 자리엔 지난해 10월 택시기사 등이 쉴 수 있는 ‘운수종사자 휴게시설’이 들어섰다. 4300㎡ 부지에 3층 규모다. 운동실과 휴게실, 택시 콜센터 등이 있다. 운수종사자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택시기사 최배철(48)씨는 “춘천역 근처로 접근성이 좋아 찾는 기사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사상구는 ‘포푸라마치’라 불렸던 감전동 집창촌 일대를 7080 분위기가 나는 복고풍 거리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상구는 2층짜리 성매매 업소 건물을 개조해 ‘포푸라다방’을 열 예정이다. 70년대 분위기가 나는 간판과 인테리어로 꾸미고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방식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대구시는 도원동에 있는 속칭 ‘자갈마당’ 출입구에 방범용 폐쇄회로TV(CCTV) 5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성구매자들에게 경각심을 줘 발길을 끊게 만들기 위해서다. 이후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원도연 원광대 대학원 문화콘텐트전공 교수는 “집창촌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공간적으로 침체된 도심을 살리면서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성매매 집결지 23곳 가운데 일부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상당수는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과 인력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주·부산·춘천=김준희·황선윤·박진호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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