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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 카네기홀 데뷔, 청중 전원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22일(현지시간) 뉴욕 카네기홀에 데뷔했다. 본인이 “카네기홀 연주를 어린 시절부터 꿈꿨다”고 했을 정도로 중요한 무대다. 베르크 소나타 Op.1, 슈베르트 소나타 19번, 쇼팽 전주곡 24곡을 연주했다. 이날 뉴욕에서 연주를 본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현장의 분위기를 전화통화로 전해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피아니스트 백혜선 현지 리뷰 #콩쿠르 우승자 아닌 음악가로서 모습 보여 #연구에 기반한 즉흥적 연주 #3층까지 꽉찬 객석, 연주 후 전원 기립 #현지 비평가들의 리뷰가 관건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은 쇼팽 콩쿠르 1등 수상자처럼 연주하지 않았다. 그는 콩쿠르 우승자가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크고 싶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조성진은 테크닉이 굉장히 좋고, 피아니스트로서 장점이 많은 연주자다. 그런데 그걸 이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교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인으로서 서고 싶다는 뜻이다.

22일 카네기홀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22일 카네기홀에 데뷔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예를 들어 쇼팽의 전주곡 24곡 중 12번을 폭풍같이 휘몰아치다가 13번에 딱 들어갔을 때는 완전히 지상낙원을 경험하게 했다. 청중은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또 14번은 쇼팽의 소나타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쓰여진 곡이다. 곡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듯, 조성진은 이런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 보여줬다. 피아니스트로서의 테크닉을 보여줘야할 때는 어마어마하게 보여줬지만 음악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그 기교를 절제할 줄 알았다.
피아니스트에게 카네기홀 데뷔는 보통 일이 아니다. 사실 카네기홀에서 초청한 공연에 섰으면 ‘할 일을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피아니스트가 미국 데뷔로 카네기홀을 꿈꾼다. 게다가 23세의 동양인 피아니스트가 이 무대에 처음 설 때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까. 그런데 조성진은 쇼팽 콩쿠르 1위 입상자처럼 연주 곡목을 계획하지도 않았다. 베르크와 슈베르트를 선택했다. 쇼팽 콩쿠르 이후 가장 자신 있을 쇼팽만으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고 비엔나에 근거를 둔 작곡가들을 고른 것이다. 조성진이 독주회를 장기자랑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조성진은 베르크, 슈베르트, 쇼팽을 연주했다

조성진은 베르크, 슈베르트, 쇼팽을 연주했다

이제 중요한 건 리뷰다. 뉴욕의 비평가들은 이 젊은 동양 피아니스트의 데뷔에 어떤 평가를 할까. 객석에는 몇몇의 비평가와 공연 관계자들이 보였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조성진이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굉장히 본능적으로 연주했기 때문이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미리 계획한 대로 음악을 끌고 간다. 하지만 조성진은 ‘내가 했던 계획을 모두 뒤엎고 새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했다. 또 슈베르트소나타 연주에는 대비가 분명했다. 어둡고, 베토벤과 같은 무게가 있는 이 곡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비평가라면 이런 점에 대해 비판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피아니스트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낫다. 그 바탕에 진지한 공부가 있었다면 말이다. 단지 다르게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확고한 생각 위에서 다르게 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날 카네기홀은 청중으로 가득했다. 3층의 발코니석까지 단 한 자리도 비지 않은 듯했다. 뉴욕 현지 청중이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특히 음악 공부하는 학생이 많이 눈에 띄었다. 조성진은 지금 세계적으로 최신 스타다. 가장 큰 콩쿠르에서 가장 최근에 우승한 피아니스트기 때문이다. 뉴욕의 많은 음악학도가 그 실력을 보고자 온 듯했다. 그리고 모든 청중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3층까지 꽉 들어찬 청중

3층까지 꽉 들어찬 청중

몇년 전 카네기홀에서 한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봤던 기억이 난다. 그 역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였고 그 때가 두번째 카네기홀 독주회였다. 그는 그때까지도 콩쿠르 우승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쇼팽의 작품을 장기자랑처럼 연주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느라 음악에 대한 생각도 철학도 세우지 못했다. 공부가 부족했다. 나는 그 독주회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걸어나왔다.

연주 후 인사하는 모습

연주 후 인사하는 모습

조성진의 독주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콩쿠르 우승자에서 음악가로 가는 길을 선택해 거기에 섰다. 카네기홀도 거대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객석에 있는 내가 더 긴장했을 정도로, 저렇게 위축되지 않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음악에 몰두했다. 한국에서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나왔다는 것보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일의 중요성을 아는 피아니스트를 만났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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