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하마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너희에게 도전하는 신의 적들과 싸우되 먼저 공격하지는 말라." 이슬람 경전인 코란은 "신은 공격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교도 압제자에 대한 지하드(聖戰)는 엄격히 방어적 성격으로 제한된다. "이 성스러운 방어전에는 반드시 천상의 보답이 따를 것이다."

2004년 3월 22일 새벽, 이스라엘의 아파치 헬기가 세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모스크에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던 68세의 셰이크 아메드 야신은 휠체어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이슬람 저항단체인 하마스를 창시한 정신적 지도자였다. "모든 팔레스타인 땅에 신의 깃발을 나부껴야 한다"며 지하드를 선포했다. 이스라엘을 지도상에서 지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군사조직인 이제딘 알카삼 여단을 통한 자살 폭탄 테러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집요하게 야신의 목숨을 노렸다. F-16 전투기를 보내 미사일을 쏘아대기도 했다. 그에 대한 적개심은 1998년부터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해 야신은 4개월간 아랍 국가를 돌며 영웅 대접과 함께 3억 달러를 모금했다. 하마스는 이 돈으로 가자와 서안 지구에 학교와 병원을 지어 팔레스타인 빈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획득했다. 다급해진 이스라엘이 표적 공격에 나서자 야신은 두 가지를 예언했다. "나의 죽음은 수많은 이슬람 전사를 낳을 것이다." "2025년까지 이스라엘은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

최근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압승했다. 야신의 예언은 2년도 지나지 않아 절반이 실현됐다. 승리의 원동력은 의외로 유혈 테러가 아니라 빈민가에 세운 학교와 병원 덕분이었다. 미국 뉴스위크는 "하마스가 민생에 주력하면서 착실히 표밭을 늘렸다"고 분석한다. 정권을 잡은 하마스는 여전히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하마스에 대한 표적 암살 정책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십자군전쟁 때 이슬람 성지를 지켜낸 해방자 살라딘은 후계자 자헤르에게 이렇게 유언했다. "신의 의지를 따라 행하라. 그것은 평화의 길이다. 결코 피에 의지하지 마라." 당시 십자군은 "하나님이 원하신다(Deus Vult)"고 외쳤다. 무슬림 병사들은 "신의 적을 무찌르자"는 슬로건으로 맞섰다. 그 살벌한 구호는 지금도 난무하고 있다. 십자군의 Crusade(성전)와 살라딘의 Jih?d(성전)는 900년이 흐른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