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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에 오뜨 꾸튀르를 입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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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호 08면

애스턴 마틴 V12 자가토

애스턴 마틴 V12 자가토

독일에서 야금술을 배우고 돌아온 이탈리아 청년 우고 자가토(Ugo Zagato·1890~1968)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비행기 제작사인 안살도 포밀리오에 입사했다. 공기역학을 적용한 가볍고 혁신적인 비행기 제작자로 돈과 명예를 얻은 그는 1919년 비행기 제작기술과 디자인을 자동차에 도입한 회사, 자가토(ZAGATO)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100년. 이제 자가토는 알파 로메오·애스턴 마틴·벤틀리·페라리·람보르기니·마세라티·포르쉐 같은 세계적인 슈퍼카 브랜드와 손잡고 이들이 만든 차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입힌 ‘자가토 라인’을 만들어낸다. ‘Z’ 혹은 ‘ZAGATO’라는 각인은 남다른 차를 원하는 자동차 매니어나 카 컬렉터들에게는 엄청난 파워다.

스위스 판테온 바젤 자동차 뮤지엄에서 개막한 ‘자가토 스위스’(2017년 4월 17일까지)는 자동차 디자인 역사를 새로 써온 자가토의 모델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중앙SUNDAY S매거진이 전시장 관람에 이어 밀라노 북부 도시 로(Rho)에 있는 자가토 본사를 방문했다. 3대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안드레아 자가토(57) 대표를 한국 언론 최초로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밀라노 보코니대 경제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바로 패밀리 비즈니스에 참여했다. 1980년대에 이미 두 명의 엔지니어와 세계 최초의 캐드 모델링 회사 ‘Z 프로제티’를 설립, 알파 로메오 S.Z(스프린트 자가토)와 R.Z(로드스터 자가토)를 컴퓨터로 디자인한 인물이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변신 마법사, 자가토를 만나다

스위스 판테온 바젤 자동차 뮤지엄 전시장은 로마의 판테온처럼 천장 중앙이 뚫린 원형의 올드카 전시장이다. 1층 로비 중앙에 전시된 노란색 알파로메오 TZ3와 검정색 마세라티 몬스터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다. 본 전시가 열리는 3층에 올라가니 27년 제작한 알파 로메오 6C 1750을 비롯, 38년 란챠 아프릴리아 스포트, 57년 포르쉐 356 자가토 등 올드카부터 포르쉐 카레라 GT 자가토 같은 동시대 모델 20 여대가 둥근 벽을 타고 퍼레이드 하듯 진열돼 있었다. 공기 저항을 적게 받도록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자가토 토털 디자인 센터가 디자인한 오메가의 시계나 라이카의 망원경 등 다른 분야 제품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스위스 판테온 바젤 자동차 뮤지엄 전시장은 로마의 판테온처럼 천장 중앙이 뚫린 원형의 올드카 전시장이다. 1층 로비 중앙에 전시된 노란색 알파로메오 TZ3와 검정색 마세라티 몬스터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다. 본 전시가 열리는 3층에 올라가니 27년 제작한 알파 로메오 6C 1750을 비롯, 38년 란챠 아프릴리아 스포트, 57년 포르쉐 356 자가토 등 올드카부터 포르쉐 카레라 GT 자가토 같은 동시대 모델 20 여대가 둥근 벽을 타고 퍼레이드 하듯 진열돼 있었다. 공기 저항을 적게 받도록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자가토 토털 디자인 센터가 디자인한 오메가의 시계나 라이카의 망원경 등 다른 분야 제품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안드레아 자가토 ⓒ Carlini

안드레아 자가토 ⓒ Carlini

쇼룸

쇼룸

다른 카 디자인 회사와의 차이는 뭔가.
“대부분의 코치 빌더(Coach Builder)는 자동차 제조업 종사자들이었지만 우리는 비행기를 만들었던 할아버지가 만든 회사다. 기본적으로 다른 점은 고객이나 자동차 브랜드의 요구에 의해 희귀한 한정판 자동차를 만든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대량생산용 자동차는 디자인하지도, 만들지도 않고 있다.”

이유가 있나.
“대량 생산 제품은 소모를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휴대폰·세탁기·컴퓨터처럼 최신 기술이 적용된 제품들은 멀쩡한 기존 제품을 구식으로 만든다. 구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제품으로 바꾸도록 한다. 새 걸 사도록 의도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계획된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전략이다. 패션의 유행이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대중이 좋아할 만한 모델을 개발하고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실용적으로 디자인됐지만, 사람들은 소모품을 미치도록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신 수집용 제품에는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수집용 차에 전념하나.
“수집용 차는 유행에 상관없이 영구적이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가격이 오른다. 수집용 차들이 안전자산이 된 이유다. 다른 유명 디자인 회사들이 제작한 차 중 수집용은 몇몇에 불과하지만 우리 차는 모두 수집용이다.”
양산차를 기본으로 겉모양만 디자인하는데.
“유명 브랜드와 처음부터 같이 기획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 소장 차를 변형하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든 내부에 어떤 부품이 들어있는지는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리는 자동차에 ‘오뜨 쿠튀르의 옷’을 입힌다. 지금까지 300종이 넘게 만들었다.”
람보르기니 5-95자가토

람보르기니 5-95자가토

디아토 8VU Gold

디아토 8VU Gold

알파로메오 TZ3

알파로메오 TZ3

벤틀리 GTZ 자가토

벤틀리 GTZ 자가토

애스턴 마틴 DBS-Centennial

애스턴 마틴 DBS-Centennial

포르쉐 카레라 자가토 스피드스터

포르쉐 카레라 자가토 스피드스터

공장 작업과정

공장 작업과정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점은.
“아름다워야 한다. 시장에 나온 디자인과 비슷하면 구분이 되겠나. 그럼 대가도 요구할 수 없다. 또 너무 달라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해도 안 된다. 수명이 긴 타임리스(timeless) 디자인이어야 한다. 30년이 지나도 모던하게 느껴지는, 소모되지 않는 디자인. 그것이 자가토 디자인의 파워다.”

특이한 재료를 쓰나.
“지금 만드는 차는 알루미늄을 사용하지 않고 카본 파이버를 쓴다. 디자인 툴도 중요하다. 다들 손으로 디자인하던 1980년대, 우리는 처음으로 CAD를 사용해 알파 로메오를 디자인했다.”

디자인은 누가 하나.
“프로젝트는 팀워크로 진행된다. 엔조 페라리가 ‘고독한 천재는 없다. 팀워크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처럼 팀워크를 중시한다. 21세기에 팀워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고독한 천재들의 자리를 대신한다. 팀의 리더가 꼭 디자이너여야 할 필요는 없다. 엔지니어일 수도, 혹은 보잉사처럼 심리학자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고객의 의견을 수렴한다. 아이디어에서 제품 출시까지는 1년 정도 걸린다.”
자동차 수집가들의 수요는 어떤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점점 늘고 있다. 미국의 경우 50~60년 전부터 자동차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독일이나 영국 등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 국가에도 수집가들이 늘어났다. 10년 전부터는 중동에서, 중국에서는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집용 차의 장점은 뭔가.
“예술품 수집보다 훨씬 더 흥미롭다는 점이다. 우선 쓸 수 있다. 구입 후 타고 다니며 밀레 밀리아(Mille Miglia·자동차 경주대회)나 콩코르소 델레간자(Concorso d’Eleganza·빈티지카 페스티벌)에 참가도 해 보고, 값이 오르면 팔기도 한다. 예술품은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도 왜 비싼 지 설명이 필요하고 구매자를 이해시켜야 한다. 왜 피카소의 어떤 작품은 더 비싸고 어떤 작품은 더 싼가? 게다가 그림을 보여주려면 그림이 걸린 곳으로 초대해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자동차는 어디서 만들었는지, 어떤 레이싱에서 우승했는지 설명하기도 쉽다. 집에 놓고 보기만 해도 좋은데 그 차를 운전하고 나가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최근 30년 동안의 자동차 수집이 금 모으는 것보다 낫다’는 사람도 있었다.”
중국인 고객도 많은가.
“중국에서는 법적으로 중고차 수입이 금지돼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차를 구입해 이곳에 놔뒀다가 밀레 밀리아나 돌로미티 골든컵에 참여할 때 쓴다. 이런 외국 고객을 위해 회사 내에 주차장을 따로 만들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회사들과 협업하고 있기 때문에 한 회사의 모델만 말하면 다른 회사들은 섭섭해 할 것이다. 어쨌건 각 회사의 제품 중 자가토가 만든 제품은 훨씬 비싸다.”
가격이 어떤데.
“지난해 8월 피아트 8V는 옥션에서 400만 유로(약 51억원)에 거래됐다. 1962년도에 1만1600달러 하던 애스톤 마틴 DB4/GT는 2015년 12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거의 2000만달러(약 229억원)에 팔렸다.”
MV 아구스타 F4Z

MV 아구스타 F4Z

MV 아구스타 F4Z 앞에 서 있는 안드레아 자가토

MV 아구스타 F4Z 앞에 서 있는 안드레아 자가토

지난해 9월 프랑스 샹티이에서 열린 빈티지 카 페스티벌 ‘아트 & 엘레강스’에서 MV 아구스타(Agusta) F4에 새 옷을 입힌 F4Z는 세계 유일 모델로서 화제가 됐다. 오토바이는 처음 제작했다는데.
“우리가 디자인한 슈퍼카를 이미 대여섯 대 소유한 일본 고객이 ‘자가토가 디자인한 이탈리아 오토바이가 가능한가’하고 물었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고민하다가 MV 아구스타의 죠반니 카스틸리오니 사장을 만났다. 그쪽 역시 다른 회사에 디자인과 제작을 의뢰한 적이 없어 모두에게 모험이었지만, “안될 거 뭐 있나,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MV 아구스타 제품 중 가장 유명한 F4 모델을 골랐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고객을 위해 단 한 점만 만들기로 하고 여론이나 대중의 반응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제작사라면 오리지널 모델의 케이스를 뜯고 새 옷을 입혔겠지만, 우리는 기존 모델의 틀을 유지한 채 그 위에 덧입혔다. 또 비행기처럼 매끈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위해 큰 조각으로 최소한의 틀을 만들었다. 덕분에 마치 조각작품처럼 빛난다.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은 우리도, MV 아구스타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할리우드의 두 영화배우로부터 자신들을 위한 오토바이도 만들어달라는 제안까지 받고 MV 아구스타와 함께 논의중이다.”
수집용 차만 만들면 회사는 어떻게 유지하나.
“우리의 비즈니스 유니트는 두 개다. 하나는 수집용 차 디자인으로 여기엔 자가토 이름과 심볼이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디자인 서비스다. 보잉이나 봄바디어, 텔레콤 이탈리아 등과 협업해 기차·트램·비행기 디자인을 한다. 건축가 노만 포스터가 기획한 아부다비의 녹색도시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의 무인 자율주행차도 우리가 제작했다. 회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토털 디자인도 한다. 한 중국 전기차 회사의 로고·웹사이트·전기 자동차·전시공간 등 모든 컨셉트를 디자인했다. 이것으로 베스트 회사 이미지 상도 받았다. 1m x 2m 사이즈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자동차도 기획했다. 하지만 이런 프로젝트와 디자인 서비스에는 자가토라는 서명을 하지 않는다.”

전기차 등 미래형 자동차가 나오고 있는데 이 경우 디자인도 바뀌나.
“당연하다. 전기차 엔진은 바퀴 부분에 장착되기 때문에 본네트 부분이 사라지거나 작아진다. 이에 따라 에어컨도 다른 곳에 배치하게 되니 구조 자체가 바뀌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빠르게 진화하는 신기술이다. 올리베티·코닥·노키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신기술이 나오면 기존 시장은 사라질 운명에 처하기 때문에 기업은 신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시장에서 자가토처럼 외관을 제작하는 회사는 큰 문제가 없다. 작은 회사로 남겠지만 장수 기업이 될 것이다.”
바젤 판테온에서 전시를 시작했다.
“2019년 자가토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제작한 오리지널 자동차를 찾아보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자가토 소유자들이 전시를 보고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2019년 이전에 우리가 제작한 모든 모델을 찾고 싶다. 현재 전시된 차도 전시가 열리는 6개월 동안 로테이션 된다. 자가토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모든 수집가들이 참여하게 만들 것이다. 동시에 자가토 디자인의 수준을 일반인들이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자가토(ZAGATO)
우고 자가토가 처음 만든 차 피아트 501은 모양이 비행기 동체와 비슷했다. 무거운 목재 대신 알루미늄 바디를 장착했다. 가벼운 차는 연료가 적게 들고 더 빨리 달릴 수 있었기에 알파 로메오를 비롯한 경주용 차 제작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당시 레이싱을 석권하던 알파 로메오의 레이싱 팀에 엔초 페라리(Enzo Anselmo Ferrari·1898~1988)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레이싱 팀을 만들고 알파 로메오의 엔진과 자가토를 영입해 자신의 경주차를 제작, 28년부터 32년까지 열린 모든 경주에서 우승한다.

이후 마세라티·애스톤 마틴·알파 로메오의 그란투리스모 모델 분야에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적용했다. 특히 운전석과 조수석 윗부분이 볼록한 ‘더블 버블 루프’는 자가토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우고 자가토가 타계하자 아들 엘리오가 경영을 맡았다. 75년에는 피닌 파리나와 협업에 나섰고, 80년대 중반 애스턴 마틴 V8 자가토와 마세라티 비투르보 스파이더를 제작해 토리노 자동차 박람회에서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애스턴 마틴이 인수를 제안했으나 알파 로메오와의 협업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90년대 들어서는 토털 디자인 센터를 설립, 영역을 확장한다. 2010년 알파 로메오와의 90년 협력을 기념하는 TZ3 코르사를 발표해 콩코르소 델레간자에서 최고의 컨셉트카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BMW와 협업, Z4를 기본으로 한 BMW 자가토 쿠페를 만들어냈다. 2015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자동차박람회에서 대만업체와 함께 전기차 썬더 파워 세단을 발표한 데 이어 미래형 전기차 SUV도 개발중이다.

밀라노(이탈리아)·바젤(스위스)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ZAG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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