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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마누엘 칼럼

외교 혁신을 위한 자매학교 네트워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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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회동은 내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않았다. 양국 정상들은 마치 서로 생판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각자 추구하는 어젠다를 밀어붙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이익을 공유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동상이몽의 사례를 목격하는 것 같았다.

한국 주도의 새로운 외교혁신 필요
한·미·중·일 학생들 참가하는
초·중·고 자매학교 네트워크로
글로벌 마인드, 시민 연대 키워야

무엇보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은 외교관들이 머리를 긁적이고 코를 움켜쥐게 만든 새로운 ‘정치적 예측 불가능성’의 사례였다. 양국 정상은 한국을 회담 의제로 삼지 않았다. 북한이 불러온 위기와 군사 동맹관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현재 외교적 조정에 필요한 주한 미국대사도 일본대사도 없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 모욕적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용인해서는 안 된다.

설사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정책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더라도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을 북한 정책과 관련된 모든 발표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키는 게 그의 윤리적인 의무다.

개인적으로 나는 예측 불가능성이 프로 레슬링에는 꽤 도움이 되지만 외교 분야에서는 전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이 자신 있고 용감하게 한국이 창안한 버전의 ‘예측 불가능성’에 착수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는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의미 있는 외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긴 리무진 차량 뒷좌석에 앉은 도도한 대사들보다 이들 나라의 초·중·고 학생들이 나서게 하는 게 낫다. 이들은 사실 우리의 미래가 아닌가.

나는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토론 행사에 참석하러 온 한·중·일 고등학생들에게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미래에 대해 정직하게 토론했으며 모두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나는 외교관들이 그들처럼 혁신적으로 토론하고 창의적인 솔루션을 내놓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학생 교류나 협력에 보다 많은 학생이 더 일찍, 더 오래 참가하게 하면 어떨까. 한국·일본·미국·중국의 초·중·고 학교들이 자매학교 네트워크를 수립해 수개월이나 수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참가 학생들이 서로 급우로서 알게 되고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기술을 통해 4개국 학생들은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온라인 세미나에서 토론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면 4개국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짧은 발표를 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의 발표를 온라인으로 주고받으면서 학생들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학생들이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비교는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키우고 다른 나라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교류는 학생들이 영어를 재미 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적극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어나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처럼 아주 간단한 교육적인 수단이지만 4개국에서 수십, 수백, 혹은 수천 개의 학교가 고등학교까지 혹은 졸업 후에도 온라인 협업을 지속한다면 학생들은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될 것이다. 외교적인 마찰 사고나 정치적인 겉치레 때문에 4개국의 우호 관계가 궤도를 이탈하는 불상사를 방지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은 직접 오프라인으로 만나 그들의 공동체의 희망과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개인적으로 맺은 우정은 상호 연결된 공동체들 간의 비즈니스 기회로도 연결될 수 있다. 학생들이 맺은 긴밀한 개인적인 유대를 바탕으로 4개국의 공동체들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일본·미국·중국과 다른 나라들은 금융이나 기술 통합의 결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경제·기술의 통합에도 불구하고 시민들 간의 긴밀한 관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 간, 시민 간 통합의 병행 발전이 필요하다. 이들 나라 간의 경제 통합도가 높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다른 나라 경제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각국 시민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자칫 감정적인 반응과 깊은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최고위층 간의 외교적 균열은 큰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기술을 활용해 장기적인 대화와 협력을 위한 우호의 가교와 넓은 통로를 수립하는 창의적인 수단이 이미 존재한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국이 주도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대응은 바로 자매학교 네트워크 같은 예상외의 혁신이다.

임마누엘 패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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