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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의 시시각각

외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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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상연 논설위원

최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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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일본의 성장 경로를 따라간다는 얘기가 있다. 도쿄 올림픽이 1964년, 서울 올림픽이 1988년에 열린 걸 들어 대략 20여 년 차란 아이디어가 확산돼 있다. 오래된 주장인데 몇 년 전 ‘인구절벽’과 함께 다시 떠올랐고, 최근 IMF 보고서 탓에 뜨거워졌다. 고령화, 잠재 성장률 하락 등의 수치가 20여 년 전 일본과 비슷해 지금 우리 경제는 한마디로 일본병 초입이란 거다. 일본식 발전 모델을 따랐으니 그럴 수 있겠다는 전망이 꽤 많다.

안철수·유승민 비슷한 안희정
문재인과 다른 텐트는 어떤가

북한은 비슷한 시차를 두고 소련을 뒤따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늘의 북한이 패망 직전인 90년대 초 소련을 닮았다는 것이다. 3만 명에 달하는 탈북자 연구에 따르면 북한에선 최근 노동당 당원증을 돈 내고 반납하는 초급당 간부가 급증했다고 한다. 장마당 돈벌이 때문이라는데 소련 말기 외엔 드문 현상이란다. 주민들의 정체성이 수령에서 돈으로 이동했다는 의미가 있다. 스탈린 전체주의가 북한 모델이니 비슷한 말로인지 모를 일이다.

일본과 소련이 남북한의 우울한 행로라는, 말하자면 정해진 미래란 가정에 선뜻 동의하긴 어렵다. 다소간의 일리도 있지만 앞일이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가뜩이나 미워 죽겠는 일본인데 실패까지 베끼게 된다면 딱하고 한심한 일이다. 그래서 믿는 건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내놓는 깨알같은 처방전이다. 4차 산업혁명 적임자를 자처하는 후보들이 하나같이 일자리를 늘리겠다니 조금쯤 안심은 된다.

문제는 외치다. 밖으론 미사일, 안에선 독침을 쏴대는 비상식의 김정은 정권이다. 소련짝이 나 무너지거나, 변화시키는 게 당연하지만 반대하는 주자도 있다. 당장 집권이 확실하다는 더불어민주당에서 그렇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사드 배치를 놓고 전선을 만들었다. ‘북한 먼저 가겠다’와 ‘한·미 정상회담이 가장 급하다’로도 갈렸다.

내치보다 외치로 갈린 건 큰 변화다. 영호남 지역 싸움에 재벌과 노조의 패권 다툼이 그동안 우리 대선전이었다. 친북과 반북, 친미와 반미 같은 외치 프레임을 빼들면 색깔론에 분열주의라고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지역 대립엔 힘이 빠졌다. 어떤 주자도 출신 지역의 몰빵 지지를 받지 못한다. 재벌이든 노조든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엔 힘이 실렸다. 이 와중에 북한이란 분절점이 생겼다.

북한이 붕괴할지 여부야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순실씨는 2015~2016년께 무너질 거라고 했다지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전문가가 수적으론 훨씬 많다. 어느 쪽이라 해도 북한을 어떤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갈지는 우리 생명과 안전에 관한 중차대한 문제다. 태영호 공사 탈북에 김정남 암살을 보면 최소한 심상치 않은 북한이다. 워싱턴선 하루가 멀다하고 정권붕괴론에 선제타격론이 나오는 마당이다. 북한 이슈는 당연히 종북몰이가 아니다.

더구나 국회 개헌특위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 바꾸자는 데 사실상 합의했다. 외치 대통령은 선거로 뽑고 내치 총리는 국회가 추천하는 구조다. 그런 개헌이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그래도 ‘외치가 국민 선택’이란 결론은 남는다. 그렇지만 아마도 민주당 경선전이 북한 이슈로 결판나진 않을 게다. 미국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해도 문재인을 후보로 만들어낼 거라는 친노, 친문이다. 안 지사 돌풍이 흥행 차원을 넘었다고 보는 순간 배제하는 쪽으로 뭉칠 게 뻔하다.

대선 본선이라면 다르다. 안 지사와 안철수·유승민 의원은 당이 모두 다르다. 그래도 일본짝 안 나려면 무능한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입장은 같다. 북한 정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외치 목소리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같은 텐트가 자연스럽다. 각자 다른 곳에서 서로에게 고함을 칠 이유가 없다. 외치로 모이고 외치에 대한 국민 판단을 구해야 외치 대통령이 나오지 않겠는가.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