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밤꽃향기···』 「사내 」역 나한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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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이론을 빌지 않더라도 이따금 그런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누군가 자신을 망가뜨려 주었으면 하는 은밀한 충동. 자신을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버리고싶은 이상한 유혹. 20일 방영될 MBC-TV의 『MBC베스트셀러극장-밤꽃향기 휘날리며』(장선우극본·선우완연츨)는 바로 과거에 겁탈당한 경험을 증오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미칠듯이 그리워하는 한여자의 방황을 다룬 충격적 심리드라머다.
여자(전세영분)의 의식속으로 불쑥불쑥 걸어들어오는 사내, 그는 드라머전편을 통해 한마디 대사도 내뱉지 않는다. 검은안경, 검은 워커, 검은 셔츠, 어깨에서 팔목까지 금방이라도 몸밖으로 튀어나올것 같은 팽팽한 근육, 동물처렴 으르렁거리는 숨소리. 그가 탤런트 나한일(33)이다.
『이렇게 이상한 배역은 처음입니다. 연출자가 제게 요구한 것은 연기가 아니라 한 여자의 의식을 지배하는 흐릿한 덩어리, 본능이었으니까요.』
나한일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그 사내는 단순한 치한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의식속에 웅크린 피학본능, 일탈본능이 만들어낸 허구적 상징이라고 말한다. 『여성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줄지 걱정입니다. 저의 연기패턴에도 충격적 사건으로 들어앉을 것이구요.』
이 드라머만봐서는그가 『MBC미니시리즈-내일 또 내일』의 한없이 선량하고 유약한 청년 화가 강진우였음을 믿기 어렵다. 또 베스트셀러극강 『팔색조』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보여주었던 섬세하고 몽상적인 연기를 떠올리기 힘들다.
짙은 우수와 강인함. 그것이 탤런트 나한일의 2중성이다. 그는 개인도장을 갖고있는 검도7단이사내이며,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다.
서라벌 예대출신. 『쥐덫』 『페스트』등의 연극과 『외인구단』 『어둠의 자식들』등의 영화쪽에서 거친 「힘의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는 그러나 TV쪽에서는 「낭만주의자」로의 일대변신에서 성공, 몇년사이에 MBC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런점에서 『밤꽃향기····』는 그에게 또 다른 모험이다.
『저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다 내팽개쳐버린 작품속의 인물들은 모두가 악몽입니다. 그러나 제자신도 모르게 또다른 악몽들의 방문을 미칠 듯이 그리워합니다.』<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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