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겪는 부칙협상…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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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야가 11일 8인정치회담에서 개헌안 부칙협상에 실패함으로써 당초 이날로 예정했던 개헌안발의가 늦어지고 쟁점인 총선시기에 대한 협상은 앞으로 상당시간 더 걸릴게 확실해졌다.
당초 그리 어렵지 않게 타결될 것으로 보이던 이문제로 여야가 합의한 발의일정도 못지키게된 것은 복잡한 정치적의도와 이해관계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 내부에서 이런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못할 경우 이 문제는 보다 장기화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아직은 이 문제로 10월말이전 개헌확정, 12월20일이전 대통령선거라는 노·김회담의 정치일정 합의에 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양당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11일상오 민정. 민주 양당 8인정치회담은 양당의 입장이 모두 확고해 대표들의 재량권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서로의 입장만 전달한 채 20분만에 결렬됐다.
이에따라 양측은 내부 의견조정이 될때 다시 연락해 만나기로 하고 8인정치회담을 일단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8인정치회담에서 민정당측은 『내년 2월안을 받을수 없다면 현 의원 임기를 보강해주는 선에서 내년 l0월말에 실시토록 하자』 고 새로운 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측이 이를 거부.
민정당측은 『국회의원 선거를 2월에 실시하는 것은 「새헌법·새정부·새국회」 라는 명분에 따라 12대 국회를 임기전에 해산하자는 정치적 결단에 의한것이었으나 그것을 받을수 없다면 법이론대로 의원임기를 보강하여 10월말에 실시하자는 것』이라고 민주당측에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이에대해 민주당측은△동토선거를 피하고△정권인수과정의 혼란을 방지하며△구속자 및 공민권 제약자의 총선참여등을 내세워 계속 새정부 수립후 총선 실시를 고수.
회담후 최영철민정당, 박용만민주당측 대표는 이제까지 교대로 발표해 오던 것과는 달리 공동발표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내세우며 얼굴을 붉히고 설전을 벌였다.
△박=「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민정당측 논리로 봐도 12대 임기를 채운다는 것은 용납할수 없다. 새 부대를 썩어빠진 술로 채울 수 있는가.
△최=물론 우리도 최선책은 새정부가 출범하기전 새 국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박=우리도 좋다. 그러나 참정권 제한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
△최=사면은 사법적 기준에서 해야 한다. 간첩·방화범등은 풀 수 없다.
△박=살인자·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을 풀자는 것이다. 이들을 안풀면 새 정권하에서 선거할 수 밖에 없지 않나.
◇최=임기를 채우면 법 이론에도 맞다
○…민정당이 총선을 신정부출범이전인 내년 2월에 실시하자고 고집하는 이유는 「새헌법·새대통령·새국회」라는 명분론이 주요한 요인이긴 하나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민정당은 당초 총선은 올림픽이후에 치르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으나 개헌이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어진만큼 12대 국회의원의 임기를 보강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또는 명분과 여론에도 밀린다는 판단이 작용해 내년2월로 일단 정했던것.
그러나 이같이 「새술은 새부대」라는 명분을 앞세운 내년2월 총선 주장에는 여권내의 공천권 행사등을 비릇, 겉으로는 말못할 미묘한 사정이 개재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특히 중요한 이유는 대통령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직권프리미엄」 을 다소라도 얻을수있어 어느 경우든 총선을 유리한 환경에서 치를 수 있다는데 있는 것 같다.
또 내년 4월 총선이라는 민주당측 주장은 이때가 정치적으로 여당쪽에 가장 부담이 많은 계절이고 재야측을 의식한 동교동계의 정국 주도 내지는 정계개편 의도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고 판단,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이밖에도 민정당측은 금년 12월의 대통령선거, 내년 2월의 정권인수·인계에 이어 4월에 국회의원 선거, 바로 5월에 지자체를 실시하고 9월에 올림픽을 실시한다면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적 부담이 너무크다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나 여야가 쌍방의 입장을 한치도 양보없이 고수하자 그 대안으로 민정당측은 당초에 생각했던 12대국회의원 임기보강이라는 원칙아래 10월말 이후에 실시하는것도 한 방안이라고 제시했다.
결국 민정당은 새정부 출범이전에 총선거를 실시하든지, 아니면 차선으로 의원임기를 보강하든지 양자택일 의 방법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입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내년 10월15일부터는 현행법에 따르더라도 13대의원선거가 가능한 시기다.
○…민주당측은 11일 상오 동교동계의 민권회모임, 당확대간부회의, 협상대표회의 등을 잇달아 열고 대책을 논의했으나 회의가 거듭될수록 『총선시기만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는 강경쪽으로 굳어져 이날 8인정치회담은 시작전부터 결렬될 것이 예상됐다.
민주당측이 정치일정 차질에 따른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지막 한 개 남은 부칙문제를 놓고 완강한 입장으로 나오는 것은 △재야측을 의식한 상도·동교동간의 눈치작전△노·김회담의 빛을 바래게 하겠다는 동교동측의 숨은 전략 △노태우민정당총재의방미에 부담감을 주겠다는 등의 속셈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새정부 수립후 의원선거를 실시하자는 이유중 첫번째로 꼽고 있는 것은 구속자 및 공민권제약자에 대한 총선 참여며, 특히 구속자석방, 사면·복권이 지금 단행된다면 내년2월에 선거를 실시해도 좋다고 나오는 것은 다분히 재야를 의식한 포석임에 틀림없다.
특히 동교동측은 이 문제로 인해 당초 예정됐던 개헌안 발의가 늦추어지고 정치일정 자체가 다소 뒤뚱거리게 됨으로써 정치일정을 합의했던 노·김회담의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있는 눈치다.
또 구속자 석방문제를 다시한번 부각시킴으로써 현정부가 『민주인사를 석방하지 않으려는 것은 민주화의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이다』라는 공격을 가해 노민정당총재의 방미길에 상처를 입힌다는 속셈도 들어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면서도 상도동계는 당초 새정부수립전 총선실시를 주장한바도 있고 정치일정에 차질이 오는 것을 원치않는 입장이어서 『동교동계가 하는대로 따르겠다』고 다소 방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반해 동교동계는 재야쪽에 보다더 비중을 두고있고 사후 정계개편 구상까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다 김대중고문의 광주·목포방문으로 분위기가 고양돼 있는 상태여서 『정국주도권을 계속 장악해나가야 한다』는 쪽으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수근·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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