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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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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30면

‘우리 사회는 공정한가’라는 물음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에 있었던 법조비리 사건들 그리고 지금까지의 탄핵정국에서 밝혀진 권력의 남용과 이를 통한 사익추구를 지켜본 영향이다. 그래서인지 대리만족을 추구하기 위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법과 정의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동네변호사 조들호’ 그리고 최근에는 ‘피고인’과 ‘재심’ 등이다. 주된 내용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을 단죄해야 할 사법시스템 역시 권력과 돈에 머리를 숙이고, 이에 주인공이 맞서 싸우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를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공정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지만 대체로 기회의 균등과 배분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가 공정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장년세대와 청년세대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각기 다른 눈을 가지고 있다. 최소 기준만이라도 공유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는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했던 터라 아쉽게도 공정이라는 화두를 전체 구성원이 공유한 경험은 많지 않다. 견해의 차이는 개념의 독점을 가져온다. 즉, 나는 공정한데 다른 이들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된다.

공정은 기회 균등과 배분의 균형 #절차와 기준 흐릿하면 연줄·힘 작용 #이익의 공정한 배분이 핵심 요소 #납세·국방 등 의무도 균등해야 #지속가능한 사회의 조건 충족돼

식민의 기억을 가진 나라들은 불공정의 문제를 겪는 경우가 많다. 지배세력은 자원의 수탈과 식민통치를 위해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부와 권력을 집중시킨다. 그러다보니 사회 스스로가 건전한 합의를 통해 균형을 찾아나가는 시스템이 형성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광복을 맞았지만 과거의 불공정을 시정하는 과정이 없이 곧바로 독재의 시대를 거치면서 또 다시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이 보다 쉽게 좋은 기회를 잡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경제성장의 과정에서는 경쟁이 강조되었는데 그 경쟁이 불공정과 결합되었다. 결국 불공정한 방법을 쓰더라도 경쟁에서 이기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공정의 실천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별, 경제력 등에 관계없이 입시, 채용 등 사회적 활동에 대한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기회균등에 대해 “동일한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면 비슷한 사회적·경제적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기회의 균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절차와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추상적 기준과 투명하지 않은 절차는 연줄을 통한 힘의 작용을 허용한다. 그러다보니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실력을 가진 사람보다 마당발이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기회의 균등은 공정한 경쟁으로 연결된다. ‘평평한 운동장’이 주어져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하면 공정한 경기결과가 나오기 어렵다.

이익의 공정한 배분은 공정사회의 핵심요소이다. 지역의 균형개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사용자와 근로자 간 성과의 공유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익의 배분과 관련하여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세대간 이익의 균형배분이다. 어떤 사람들은 청년층에 대해서 배려를 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이는 노년층을 보살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한다. 답은 없다. 이 경우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공정한 기준을 세우는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두고 복지공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재원에 대해서 누가 더 부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고소득자에게 더 많이 걷겠다는 정도로 재원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것은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합당하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도 아니고, 횡재한 것도 아니며, 밤잠을 거르면서 일한 땀의 대가를 단지 공리의 이름으로 과도하게 걷어가는 것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 공정의 가치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의 이익이 조화되는 지점에서 결정되어야지 어느 한쪽에 치우는 것 역시 공정하지 않다.

의무도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공정한 사회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는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의 배분에서도 적용된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서 주요한 의무는 납세와 국방이다. 과거 세대에 비해 병역의무의 공정성은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납세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현 정부가 재정확충을 위해 지하경제를 양지로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을 내세웠지만 실패했다. 봉급생활자의 부담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반면, 신고납부를 원칙으로 하는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결국 누군가는 공적 서비스로 얻는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그 비용은 사회화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입법과 사법제도는 공정사회의 완결부분에 해당한다. 공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이고 그 합의를 규칙으로 만드는 것은 입법이다. 그런데 입법의 과정에서는 의회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룹들이 보다 더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기 쉽다. 이익집단에 의해 입법 과정이 포획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통채널의 다양화와 입법과정의 투명성 제고가 긴요하다.

공정성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조건이다. 공정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한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정한 게임의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협력보다는 분열과 갈등으로 채워지게 되고 이는 건강한 사회를 위협한다. 그래서 ‘공정한 사회’는 슬로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생존의 문제이다.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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