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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대출 죄니 … 몸값 오른 마이너스통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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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한 회사원 주모(39)씨는 다른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마이너스통장에서 3000만원을 끌어다 썼다. 전세금을 올려주기 위해서다. 소유 중인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미 대출이 많아 추가 대출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씨는 “이자가 다소 비싸긴 했지만 조금씩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이너스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가계대출 중 기타대출액은 174조원으로 전년 동기(149조원)보다 25조원(16.8%) 증가했다. 기타대출은 토지나 예금을 담보로 한 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을 합한 것이다. 올 1월 기준 시중은행 7곳의 마이너스통장 잔액은 43조4753억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1조원 가량 증가했다. 경기 부진과 소득정체의 장기화로 생계형 대출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규제로 주담대 추가 대출 막혀
신용대출로 눈 돌려 급전 마련 증가
지난달 1년 전에 비해 1조원 늘어
금리 높아 가계 유동성 제약 우려

최근 마이너스통장 대출 증가는 정부의 규제와도 관련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도입했다. 대출 심사 기준을 담보 중심에서 상환능력 중심으로 바꾸고,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처음부터 나눠 갚는’ 비거치식 원리금 분할상환으로 하는 게 핵심이다. 가이드라인 시행은 특정 지역의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11.3 부동산대책과 맞물리면서 효과를 냈다. 올해 1월 시중은행 7곳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97조1097억으로 전월보다 2조1479억원 감소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든 건 약 1년 반만이다.

이렇게 담보대출이 어려워지면 돈이 필요한 사람은 신용대출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대출이 쉬운 마이너스통장으로 몰려간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담보대출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마이너스통장의 인기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부터는 아파트 잔금대출도 가이드라인의 적용을 받고, 상호금융·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으로 적용 범위도 넓어진다. 조만간 더 엄격한 대출자격 평가방식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도 도입된다.

손상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이너스통장을 긴급생활자금 용도로만 쓰는 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상환해야 할 주택용으로 활용하는 건 가계의 유동성에 상당한 제약 요소”라고 말했다.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마이너스통장 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은행 16곳(지방은행 포함)의 마이너스통장 금리는 평균 4.27%였지만 올 1월엔 4.45%로 0.18%포인트 올랐다.

대출 전략을 수정하려는 은행권의 움직임도 있다. 당분간 주택담보대출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용대출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일례로 KEB하나은행은 6일부터 ‘ZERO금리 신용대출’을 판매를 시작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한도의 10%(최대 200만원)까지 연 0%의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이다. 시중은행이 무이자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은 건 이례적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 한도소진율은 43~45% 정도를 오간다. 50% 이상 더 빌려 줄 여력이 있다는 의미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마이너스통장은 장점이 있다. 한도를 미리 설정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개념이라 일단 간편하다. 조기상환수수료 부담도 없다. 그래서 관리가 더욱 어렵다. 수시로 입출금을 하기 때문에 이자의 많고 적음을 체감하는 게 쉽지 않다. 또 대출을 받을 때는 잠깐 쓰고 채워 넣겠다고 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된다. 메우기도 전에 더 빌리는 경우가 잦아 연말쯤 되면 한도가 꽉 찼다가 연초에 성과급을 받아 갚은 직장인이 많다. 손상호 연구위원은 “이름은 ‘통장’이지만 분명히 ‘빚’이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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