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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기 잘못 없다는 대통령… 청와대 압수수색 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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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국회의 탄핵 소추 사유에 대한 2차 답변서는 동어반복이 많다. “최순실의 국정 관여 비율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총량 대비 1% 미만”이라고 했다가 비난을 샀던 지난해 12월 16일의 1차 답변서와 취지가 대동소이하다. 박 대통령은 국정 농단에 대해 “최순실이 관련된 줄은 몰랐다”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한 정당한 권한 행사”라고 주장했다. 자신의 잘못은 없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기밀 자료 유출에 대해서도 “일부 연설문 작성 과정에서 최순실의 의견을 들어 보라고 한 것이지 인사·정책 등의 다른 자료까지 보내도록 포괄적으로 지시·위임한 적이 없다”며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대기업 총수를 단독 면담해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출연을 압박한 혐의와 관련해선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게 각 그룹의 당면 현안을 정리한 ‘말씀자료’를 건네받았지만 그 내용을 이야기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검찰과 특검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안씨의 업무수첩에 적힌 대통령 지시 사항과 “대통령이 재단 명칭과 사무실 위치까지 지정했다”는 그의 진술, 이 사건 관련자들이 동시에 대통령을 핵심 인물로 가리키는 것은 신기루라는 뜻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마저 비상 사태를 책임지는 모습은커녕 일반 잡범이나 다름없이 일방적 주장만 늘어놓은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안씨가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낸 업무수첩 39권은 청와대 압수수색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이들 수첩에는 2014년부터 지난해 11월 구속 직전까지 청와대에서의 업무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10여 일 전까지 청와대 경내 사무실에 보관돼 있던 것을 안씨가 부인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자 선처를 부탁하며 임의 제출했다는 것이다.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에 끈질기게 매달리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어쩌면 청와대에는 피의자들도 모르는 증거들이 산더미처럼 컴퓨터와 서랍 속에 무심히 놓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청와대는 더 늦기 전에 압수수색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