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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의 톡톡 글로벌] 프랑스 정치인의 사생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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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트럼프’란 행성이 지구에 충돌한 것 같습니다. 취임 직후 이슬람 7개 나라 여권 소지자 입국 금지 행정명령 발동,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주장,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재협상 선언 등 들쑤셔 놓지 않은 곳이 없네요.

미국 트럼프의 등장과 영국의 유럽연합탈퇴(브렉시트)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질서 흐름을 바꿔놓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 흐름이 지속·확대될 지 여부로 주목받는 게 바로 프랑스의 대선입니다. 4월 23일 1차 선거를 치르고 과반 득표하는 후보가 없으면 5월 7일 결선 투표로 들어갑니다. 프랑소와 올랑드 대통령(사회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한 상태로, 선거전은 수십년 사이 가장 치열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유사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 국민전선(FN)의 마리 르펜, 좌파 성향의 사회당 후보 브루아 아농 전 교육부 장관, 중도 우파인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 이렇게 세 후보가 지난해까진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최근 판도가 출정이고 있습니다. 바로 ‘중도’를 표방한 엠마뉘엘 마크롱의 약진입니다. 1977년 생. 생일이 지나지 않아 아직 39세입니다. 파리정치대학·국립행정학교(ENA)출신으로 투자은행가로 일하다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 수석에 이어 2014년 경제장관으로 발탁된 사람입니다. ‘정치 맨토 올랑드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지난해 4월 사회당을 뛰쳐 나와 중도 정당 ‘앙마르슈’(En Marche·전진)를 만들었습니다. 유력 후보로 거론돼온 피용이 부인과 딸을 거짓 취업시키고 월급을 부당 지급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 자리를 마크롱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BBC에 따르면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은 15~18% 지지율로 1위 르펜(25% 선) 뒤를 잇고 있습니다. 피용의 하락세가 뚜렷해 마크롱이 르펜과 결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프랑스 여론 조사기관 IFOP와 BVA의 지난 주 조사 결과 결선에선 마크롱이 르펜을 크게 앞설거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마크롱은 그동안 프랑스의 경제정책에서 금기를 많이 건드렸습니다. 주 35시간 노동제를 유연하게 하고, 휴일 영업시간 제한을 폐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규제완화 등 친기업적 정책이 특징입니다. "프랑스에 좌·우는 의미가 없다. 나는 오랜 기간 두개로 나눠진 프랑스를 하나로 통합하겠다”고 강조합니다. '제3의 길'을 내세운 영국 토니 블레어 브랜드를 베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그는 꿋꿋하게 “나는 좌파. 그러나 현실과 거래하며 국가 개혁을 원하는 좌파”임을 강조합니다. 르펜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반(反) 난민, 반 유럽연합 등 정책에 대해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공격합니다.

지난해 8월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Paris-Match)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졌고 부부가 해변을 걷는 사진은 표지를 장식했다. [사진 파리마치]

지난해 8월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Paris-Match)와의 단독 인터뷰를 가졌고 부부가 해변을 걷는 사진은 표지를 장식했다. [사진 파리마치]

마크롱 돌풍을 보며 흥미로운 건, 프랑스인들이 정치인의 사생활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래서, 왜?”라는 거죠. 대체로 관대합니다. 사생활을 공인에 대한 도덕적 잣대로 다루지 않고 언론도 대체로 알면서 쓰지 않습니다. 마크롱의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는 25세 연상입니다. 프랑스 중북부 소도시 아미앵에서 10학년( 고교 1학년) 이던 마크롱은 프랑스 문학교사이자 연극반 지도교사이던 트로뉴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는 각각 15세, 40세. 트로뉴는 남편과 세 아이가 있었고 그중 맏이는 마크롱과 한 학년이었습니다. 연극동아리에서 급속히 가까워졌다네요. 이를 안 마크롱의 부모가 파리 최고 명문의 하나인 헨리4세 고교로 그를 전학보냈는데,마크롱은 끊임없이 트로뉴에게 전화해 "반드시 돌아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답니다. 트로뉴는 2005년 남편과 이혼하고 파리로 와 2007년 스물아홉살 총각 마크롱과 마침내 결혼합니다. 마크롱은 현재 7명의 의붓 손자가 있습니다. 이 얘기는 모두 지난해 8월 두 사람이 연예잡지 파리마치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사진 중엔 마크롱이 손자에게 젖병을 물리주는 사진도 있습니다.

17세 남학생과 42세 여선생님의 사랑. 우리 사회에선 나이차를 극복한 로맨스라기 보단 '충격적 일탈'로 보일 만한 일입니다만, 프랑스에선 인기 상승의 한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네요. 단, 마크롱이 경제장관으로 일할 때 트로뉴가 회의에 참석해 정책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된 적은 있습니다.

미테랑

미테랑

안 팽조(왼쪽)

안 팽조(왼쪽)

미테랑과 안 팽조의 딸 마자린 팽조

미테랑과 안 팽조의 딸 마자린 팽조

프랑스 정치 지도자의 파격적 사생활이 공개된 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매번 유형도 달랐습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1916~1996년)은 사회당 대선 후보이던 시절 친구의 딸과 사랑에 빠져 평생 '두집 살림'을 했습니다. 친구의 딸 안 팽조는 당시 열아홉살 고교생이었고 미테랑은 마흔여섯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미테랑을 꼭 닮은 딸 마자린을 뒀습니다.

사르코지(왼쪽), 브루니

사르코지(왼쪽), 브루니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1980년대 뇌이 시장 시절 자신이 주례를 선 결혼식의 신부 세실리아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죠. 세실리아는 부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네요. 2007년엔 세실리아와 이혼하고 브루니와 결혼했는데, 임기중 이혼 한 첫 프랑스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올랑드 현 대통령의 경우 2014년 1월 오토바이를 타고 헬멧을 쓴 채 엘리제 궁을 밤에 빠져 나가는 모습으로 화제를 모았죠. 파파라치들이 동거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를 두고 여배우 쥘리 가예를 만나러 가는 올랑드를 카메라로 잡은 겁니다.

올랑드, 쥘리 가예

올랑드, 쥘리 가예

마크롱 바람이 계속 불면 세계는 참신한 30대의 프랑스 대통령의 탄생을 보게 되겠지요. 퍼스트 레이디도 주목받을 거구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프랑스 퍼스트'를 내세운 르펜을 꺾는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에까지 몰아친 극우·보호주의 바람이 프랑스에서 일단 제동이 걸리느냐 하는 상징성이 큽니다.

이번 주 예정된 국제 이슈를 보겠습니다. 7일은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 25주년일입니다. 이듬해인 1993년 유럽연합의 정식 출범을 이끈 핵심 조약 중의 하나입니다. 브렉시트 이후 공동체의 안정성이 흔들린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 같습니다.10일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갖고, 15일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나휴 총리가 워싱턴으로 날아 갑니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 자치령인 요르단강 서안에 새로운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겠다고 해 국제 사회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유세 기간, 친 이스라엘 공약을 내놓은 트럼프의 백악관은 일단 정착촌 건설엔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아베와 트럼프, 네타냐후와 트럼프간 두 정상회담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와 중동에 영향을 미칠 내용을 풀어낼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번에도 ‘트럼프’스러운 결과가 나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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