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한 미르 사무총장 "문제 터지자 최순실이 회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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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의혹의 중심인물 최순실(61)씨가 미르재단 설립 배경에 관한 의혹이 불거지자 책임을 차은택(48)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에게 떠넘기며 재단 직원을 회유하려 한 대화 내용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최씨와 안종점(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성한(45)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쯤 한강 인근 주차장에서 최씨를 만나 회유 압력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이 전 사무총장은 "당시 최씨가 미르재단과 관련해 차 전 단장에게 전부 책임을 떠넘기면서 회유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맞다"고 대답했다. 그는 "당시 더블루케이 이사였던 고영태씨가 '회장님(최순실)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화해 집이 춘천이어서 곤란하다고 했다가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았다"며 "고씨의 승용차를 따라 한강 주차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차에서 내리자 고씨가 다가와 '녹음 우려가 있다'며 전화기를 달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이어 최씨가 타고 온 SUV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 최씨는 조수석 뒷좌석, 이 전 사무총장은 운전석 뒷좌석, 고씨는 조수석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고 검사의 질문에 답했다.

당시 이들이 나눈 대화 녹음 파일도 법정에서 공개됐다. 녹음 파일은 안 전 수석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돼 검찰이 압수한 것이다.

녹음파일에서 최씨는 "나는 신의를 저버리는 것을 제일 싫어해요. 나는 이렇게 당하면서도… 차 감독이 물러나서 아닌 척하고 자기는 선량한 사람이 되면서 결국 이 총장님 이용해서 자꾸 유도해서 만드는 거야. 결국 이 총장이 얘기한 게 다 돌고 있는 거잖아"라고 말했다. 또 "그때 총장님하고 잘 결론내고 물러나서 내가 잘 봐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사건이 점점 커지니까 기가 막혀서…사실 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거야."라며 차 전 총장의 책임으로 몰아갔다.

이 전 사무총장이 "차(은택)하고 저하고요? 물러나라고 해서 물러난 거고 본인들 싸움에 제가 등 터진 거죠"라고 반박하자 최씨는 "내가 거기 끼어들어서 이득을 본 게 뭐가 있어. 차 감독하고 둘이 싸우고 있잖아. 사무총장님이 어정쩡하게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까…"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녹음을 해놔야 주변 사람들이 저 사실을 알 수 있고, (나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우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대화를 녹음한 이유를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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