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얼굴인식 성공’과 ‘환영합니다’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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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 기자

한애란
경제부 기자

‘삐, 삐, 삐’ 요란한 경고음이 세 번 울린다. 화면에 빨간색 엑스(X) 표시와 함께 문구가 뜬다. ‘얼굴 인식 실패’.

“너무 일찍 출입증을 댔어요. 먼저, 카메라를 쳐다본 뒤에 출입증을 대야 해요.”

경호원 아저씨의 말이 뒤통수를 때린다.

또 실패다.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가 출입 관리용 얼굴인식시스템을 도입한 뒤 거의 매일 아침 로비 출입문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등 뒤로 이미 4~5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정면의 카메라를 똑바로 노려보며 출입증을 살포시 단말에 댄다. 그제야 화면에 이런 문구가 뜨면서 출입문이 활짝 열린다. ‘○ 얼굴 인식 성공’.

얼굴을 기계에 인식 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에 1년 전 찍은 증명사진과 내 현재 얼굴은 동일인이 아니라며 기계가 인식하기를 끝내 거부했다. 청사 2층에서 현실적인 사진을 새로 찍어서 등록했다. 이후 인식률은 향상됐으나 여전히 출입증을 일찍 대서, 정면을 보지 않아서,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서 등의 이유로 엑스 표시를 하기 일쑤다. 얼굴의 주요 특징 50여 곳을 분석해 판별한다는 최신 생체인증 기술이 맞긴 맞나.

얼굴인식시스템은 지난해 3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정부서울청사 무단침입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데 따라 도입된 보안 조치다. 하지만 잦은 오류 탓에 얼굴인식시스템은 청사 공무원들 사이에 최순실 사태 못지 않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저런 시스템에 22억원이나 들이다니 돈이 아깝다, 범법자 한 사람을 잡자고 전체 출입자들이 출입문 앞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이냐 등…’. 행정의 비효율만 드러냈다는 불평과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럼 기술이 문제인 걸까. 만약 얼굴 인식률이 대폭 개선되고 인식에 걸리는 시간도 단축돼서 불편함이 많이 줄어든다면 별문제가 없을까. 한 정부 중앙부처 공무원의 한탄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엑스자(X)와 ‘얼굴 인식 실패’라는 문구가 보여주는 공급자 마인드가 문제에요. 도대체 누가 실패했다는 거죠? 실패한 건 기계잖아요. 당연히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만 시도해주십시오’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얼굴 인식 성공’이란 문구도 마찬가지다. ‘정부청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로 바꾸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청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엄연히 정책의 소비자다.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얼굴인식시스템 화면에 뜨는 커다란 빨간색 엑스자 표시에서 지난해 말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떠올리게 된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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