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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기 꺼놔 사람 잡은 메타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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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욱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전민규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김민욱 내셔널부 기자

김민욱
내셔널부 기자

입춘이었던 지난 4일 오전 11시1분쯤 119에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경기도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 주상복합빌딩(최고 66층, 모두 4개 동) 3층 상가에 불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요란하게 울려야 할 경보기가 화재 직후 침묵했다. 화재 대피 골든타임이라는 5분이 흘러갔다. 결국 이날 화재로 4명이 목숨을 잃었고 47명이 다쳤다.

사망자 4명의 사인은 전형적인 화재사(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질식사)로 조사됐다.

첨단빌딩에 경보기는 왜 울리지 않았을까. 이번 화재 사건을 수사 중인 화성동부경찰서는 상가건물의 소방시설 유지 관리 업무를 담당해 온 직원 A씨(53)를 조사해 답을 찾았다. 그는 경찰에서 “사고가 나기 사흘 전인 지난 1일 오전 10시14분쯤 수신기 제어를 통해 화재경보기와 대피유도등·스프링클러를 수동으로 작동 정지해 놓았다”고 진술했다. 화재가 난 상가건물 B블록(연면적 7만7366㎡)에는 대형마트를 포함해 63개 업체가 입점해 있다. 계약기간이 끝난 뽀로로파크(키즈카페) 철거 공사로 경보기가 오작동할 경우 대피 과정에서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작동 정지해 놨다고 A씨는 주장했다고 한다.

지난 4일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진 경기도 화성 메타폴리스 주상복합빌딩 현장. [사진 전민규 기자]

지난 4일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진 경기도 화성 메타폴리스 주상복합빌딩 현장. [사진 전민규 기자]

하지만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건물의 화재경보기는 언제든지 작동되도록 항상 켜놔야 한다. A씨의 해명이 군색한 이유다.

소방전문가들은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상가 관리업체 측의 조치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뽀로로파크에 불이 쉽게 붙는 가연성 소재(스티로폼 등)를 많이 사용해 자칫 철거 과정에서 불꽃이 튈 경우 화재가 날 수 있으므로 공사 중에 별도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 맞았다. 추가 대비를 해도 부족할 판에 기존에 갖춰진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를 껐다는 것은 건물 전체를 화재 무방비 상태로 만든 것과 다르지 않다. 대피유도등까지 꺼놓고서 “대피 과정에서 안전 사고를 우려했다”는 A씨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하루 평균 1만여 명이 찾는 초대형 상가에서 자칫 더 큰 참사가 날 뻔한 셈이다.

혹시라도 상가 관리업체 측이 매출 손실을 피하기 위해 화재경보기를 고의로 꺼놓았다면 경찰이 명백히 밝혀 내야 한다. 이와 관련,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동탄신도시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주민 K씨(55)는 “혼란 최소화 핑계로 결국 사람 잡은 거 아니냐. 상가 이미지 지키려다 화를 부른 잘못된 상업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백동현 가천대 설비소방공학과 교수는 “화재 대비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도 ‘설마 불이 나겠느냐’는 안전 둔감 상태에선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글=김민욱 내셔널부 기자
사진=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