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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 ④천북수산 - “지금이 서해 굴구이가 젤루 맛있을 때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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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를 직화에 구운 뒤 초고추장 한 점 얹어 먹는다. 황홀한 맛이다.

석화를 직화에 구운 뒤 초고추장 한 점 얹어 먹는다. 황홀한 맛이다.

한국의 굴 생산량은 한 해 약 29만t에 달한다. 이중 90%는 경상남도에서 난다. 경남에서도 통영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3일 남해 일부 지역에서 생산한 굴에서 노로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한다. 하여 당분간 남해산 굴을 날 것으로 먹을 수 없다. 아쉽지만 눈을 서해로 돌려보자. 서해 굴은 1·2월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거센 바람 몰아치는 날, 굴을 찾아 서해로 떠나볼 일이다.

천북 굴단지는 겨울마다 굴이 산더미를 이룬다.

굴 요리집이 몰려 있는 보령 천북 굴단지.

서해 굴은 갯벌이나 갯바위에서 산다. 그래서 갯굴이라고 한다. 서해 갯굴은 남해 굴보다 작지만 맛과 향이 진하고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물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수하식 굴보다 작지만, 입 안에서 씹히는 식감은 더 좋다. 서해 굴맛은 바다와 햇볕, 바람이 함께 만든 맛이다.

하루 종일 굴 껍데기를 까는 아낙들.

하루 종일 굴 껍데기를 까는 아낙들.

서해 굴을 대표하는 지역은 충남의 천수만 일대다. 보령 천북면 장은리에 굴집 간판을 내건 집이 70여 곳 늘어선 굴 단지가 있다. 이곳에서 2016년 12월 굴 축제도 열렸다. 하루 최대 1만5000명 가량이 방문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굴단지에서도 천북수산(041-641-7223)을 찾는 사람이 많다. 박상원(64) 천북수산 사장에게 천북 굴이 무엇이 특별한지부터 물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돌아왔다.

불을 쬐며 굴을 구워먹는 관광객의 모습.

불을 쬐며 굴을 구워먹는 관광객의 모습.

“천북 굴이라고 뭐 특별한 거 있겄슈? 사람 마음이 그렇찬유. 대하는 남당항 가서 먹어야 맛있는 것 같구, 한우는 홍성 가서 먹어야 맛있는 것 같구. 그런 것처럼 굴구이는 천북 가서 먹어야 제맛이라구 하는 거지유.”

천북에서는 굴구이를 많이 먹는다. 굴구이의 시작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굴을 채취하던 아낙들이 모닥불에 손을 녹이다 굴을 껍질째 구워먹었다. 처음에는 변변찮은 식당도 없었다. 몇 채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번개탄에 굴을 구워먹었다. 굴구이가 천북의 명물이 된 지금은 제법 번듯해졌다.

천북수산에서는 굴 외에도 가리비, 피조개 등 조개구이도 판다.

천북수산에서는 굴 외에도 가리비, 피조개 등 조개구이도 판다.

천북수산 안은 영하의 기온이 무색할 정도로 후끈후끈했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가 들리고, 이따금 펑 소리를 내며 굴이 터지기도 했다. 한 손에는 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는 나이프를 들고 굴을 까먹어봤다. 살짝 익은 굴이 탐스럽게 통통해졌다. 불맛이 더해져 생굴보다 훨씬 고소했다. 아니 충청도 말로 ‘꼬숩다’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맛이었다. 굴만 먹기 아쉬워 피조개·가리비 등 다른 조개도 함께 구워 먹었다. 맛과 향, 식감이 전혀 다른 녀석들이 입안에서 결연한 대결을 벌이는 기분이었다. 모두 황홀한 맛이었다.

든든하고 영양 많은 굴밥.

든든하고 영양 많은 굴밥.

천북수산을 찾은 사람들은 굴구이(4인분 3만원)를 먹고 난 뒤 굴칼국수(6000원)나 굴밥(1만원)을 먹는다. 굴칼국수는 개운하고 굴밥은 든든하다. 배추김치·석박지·동치미 등을 내주는데 이 맛도 각별하다. 김치를 바닷물에 절이는 게 천북의 전통이란다. 묘하게 시원한 맛에 동치미를 세 그릇이나 비웠다. 굴물회(2만원)도 놓치면 후회할 맛이다. 동치미 국물에 무·오이·당근을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푼 뒤 굴 한 줌을 넣는다. 술 좋아하는 천북 어민은 꼭 굴물회로 해장을 한다고 한다.

서해 갯굴은 크기가 자잘하지만 감칠맛이 강하다.

서해 갯굴은 크기가 자잘하지만 감칠맛이 강하다.

천북 앞바다도 간척사업으로 갯벌을 많이 잃었다. 얼마 남지 않은 갯벌에 돌을 잔뜩 깔았다. 굴이 이 돌에 붙어서 큰다. 이른바 투석식(投石式) 굴이다. 요즘에는 투석식과 함께 송지식(松枝式)으로 얻는 굴도 많다. 송지식은 갯벌에 나무 기둥을 꽂아 굴을 키우는 방식이다. 투석식·송지식은 굴이 어느 정도 자라면 돌과 나무에서 떨어져 갯벌에 박혀 살기 때문에 자연산 갯굴로 친다. 박 사장은 “2월 들어 천북 앞바다에서 자연산 갯굴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며 “지금 캐낸 굴이 1년 중 가장 맛있다”며 식객을 충동했다. 봄이 오기 전, 다시 천북을 가야할까 보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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