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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없다, 평창서 올림픽 3연패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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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힘차게 빙판을 가르는 빙속 황제 스벤 크라머. [사진 휠라]

힘차게 빙판을 가르는 빙속 황제 스벤 크라머. [사진 휠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외국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31) 아닐까.

한국에 온 ‘빙속 황제’ 크라머
하루 12시간 훈련 얼름판 장기집권
올림픽 금메달 3개, 선수권선 17개
9일 개막 강릉 세계선수권서 예열

그는 2010년 밴쿠버 겨울 올림픽 남자 1만m 경기에서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 당했다. 레이스 도중 레인을 교차하다 코치의 착오로 잘못된 레인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크라머의 어이없는 실수 ‘덕분에’ 금메달은 한국의 이승훈(29·대한항공)에게 돌아갔다. 당시 고글을 집어던지고 울먹이던 크라머의 모습을 국내 팬들은 기억한다.

그럼에도 크라머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빙속 장거리 황제’다. 2006년 토리노부터 2010년 밴쿠버, 2014년 소치까지,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3개(5000m 2개·팀추월 1개), 은메달 2개(5000m 1개·1만m 1개), 동메달 2개(팀추월 2개)를 수확했다.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은 무려 17개다. 특히 2007년부터 3회 연속 3관왕(5000m, 1만m, 팀추월)에 올랐고, 남자 5000m 세계기록(6분03초32)도 갖고 있다.

크라머가 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개막하는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지난 30일 방한했다. 네덜란드 언론들은 방한기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한국으로 치면 인기가 '피겨여왕' 김연아 급이다. 그를 후원하는 업체도 5개나 된다. 크라머는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직접 말하기는 쑥스럽다. 네덜란드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이 인기종목이라서 사인회를 열면 사람들이 많이 몰리기는 한다"고 설명했다.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부터 스케이팅이 겨울철 주요 이동수단이었다. 국민 대부분이 스케이트를 타며, 스피드스케이팅은 축구와 함께 주요 스포츠로 꼽힌다. 등록선수가 15만명이고, 현재 7개 프로팀에서 70여명의 선수들이 활약 중이다. 국내외 주요대회는 대부분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크라머가 우승한 지난달 9일 유럽선수권대회 시청률은 전체 프로그램 중 3위였다.

한국선수와 친해 한글을 공부하는 크라머가 한국 후원사 도움으로 올린 트윗. [사진 스벤 크라머 트위터]

한국선수와 친해 한글을 공부하는 크라머가 한국 후원사 도움으로 올린 트윗. [사진 스벤 크라머 트위터]

그런 네덜란드에서도 크라머는 특별하다. 1980년대 역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이름을 날린 옙 크라머(60)의 아들인 그는 3세 때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키 1m85㎝, 몸무게 85㎏의 당당한 체격에 스케이팅 기술도 빼어나다. 게다가 하루 12시간씩 훈련을 한다. 훈련 외의 시간에는 축구·테니스·사이클 등을 하면서 휴식을 취한다. 2004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이후 줄곧 정상을 지키는 이유다. 먹고 자는 것 외엔 스케이팅 뿐인데 지겹지 않을까. 크라머는 "내게 스케이팅은 삶 그 자체다. 슬럼프에 빠진 적이 없을 만큼 스케이팅을 사랑한다. 다시 태어나도 선수를 할 거고, 그 때도 내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 레인을 잘못 알려줘 실격의 빌미를 제공했던 건 게라드 켐케스 코치다. 크라머는 켐케스 코치와 소치 올림픽도 함께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원망스럽지 않을까. 크라머는 “켐케스 코치는 네덜란드의 최고의 코치다. 그 당시의 감정보다는 그와 훈련하면서 내가 발전해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휠라]

[사진 휠라]

크라머의 목표는 내년 평창 올림픽 5000m에서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그 리허설인 이번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500·5000·1만m에 출전한다. 이승훈과 대결은 피할 수 없다. 크라머는 “내 목표는 3관왕이다. 이승훈이 매스스타트에 강하다는 걸 잘 안다. 즐겁게 경쟁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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