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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왜 국정 농단을 치정극으로 몰아가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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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 이중환 변호사가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를 증인으로 신청하던 중 내놓은 발언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탄핵 사태를 몰고 온 ‘비선 실세 국정 농단’을 두고 “이 사건은 최순실과 고영태의 불륜에서 시작됐다”고 규정했다. 또 “최순실과 대통령의 (40년 지기) 관계를 알게 된 일당들이 이익 추구에 실패하자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 제보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사건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헌재 심판정 밖에서 “엮였다” “누군가의 기획”이라던 박 대통령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주장은 고영태 증언의 증거 능력을 약화시키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 측의 상황 인식이 얼마나 안이하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정 농단 사건을 남녀 치정극으로 몰아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탄핵의 본질은 외면한 채 발단과 폭로 과정만 문제 삼는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최순실 반대 세력의 ‘악의’와 ‘왜곡’ 때문에 대통령 공모 형사사건, 헌법 위반 탄핵사건으로 번졌다는 주장은 아전인수식 해석에 불과하다. 유재경 미얀마 대사의 낙하산 인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특검 수사로 새로 드러난 사실만 해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한둘 아니지 않은가.

 대리인 측은 고씨를 증인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롯데그룹을 찾아가 70억원을 요구할 때 남자 접대부로 종사할 때 쓰던 이름을 사용했는데 왜 그랬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게 국정 농단의 본질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꾸로 해석하면 대통령 변호인단도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과 그 주변 인물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된다. 대통령 측은 그동안 고의로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꼼수를 쓰다 비난을 샀다. 이제 국정 농단을 치정극으로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재판이 8인 재판관에 의한 비정상의 길로 들어선 당일에까지 이래야 하는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