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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만난 사람] 축구팀 맡은 왕년의 보험왕 “안 되면 되게 하는 게 내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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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 조태룡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축구장에서 만난 조태룡 강원FC 대표는 “나는 오프라인 콘텐트 제작자다. 축구 팬들에게 아이콘택트·커뮤니케이션·허깅·하이파이브·샤우팅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축구장에서 만난 조태룡 강원FC 대표는 “나는 오프라인 콘텐트 제작자다. 축구 팬들에게 아이콘택트·커뮤니케이션·허깅·하이파이브·샤우팅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까?”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 단장 시절
신생 팀을 매출 300억대로 키워
강원FC로 옮기자마자 내부 개혁
비용 23억 감축, 스키장에 구장 건설
축구장 축제 등 기발한 콘텐트 구상
“경영의 기본은 아웃풋의 극대화”
관행 깬 행보 일부선 우려의 시선

지난해 3월 조태룡(53) 대표가 프로야구팀 넥센히어로즈를 떠나 프로축구 2부 리그(챌린지)를 전전하던 강원FC 대표로 옮기자 체육계 인사 대부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2009년 넥센히어로즈 단장으로 취임해 연 300억원 매출의 4강권 구단을 만든 화려한 이력이 있지만 강원FC의 경우 재정 상태가 워낙 심각해 재기가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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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원FC는 최근 스포츠팬들의 최대 관심구단으로 떠올랐다. 4년 만에 1부 리그에 복귀에 이어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폭풍 영입, 그리고 “시즌 2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출전이 목표”라는 조 대표의 도발적 행보도 한몫했다. 지난 1월 5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축구장에서 만난 조 대표는 “나는 오프라인 콘텐트 제작자”라며 “축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아이콘택트·커뮤니케이션·허깅·하이파이브·샤우팅 등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장이나 미술관, 극장에선 할 수 없는 ‘교감 놀이’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조태룡 대표는 ‘스포츠 경영의 혁신 아이콘’으로 불린다. 대학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그는 제조업·무역업을 거쳐 푸르덴셜생명과 삼성생명에서 ‘보험왕’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09년 위기에 처한 프로야구 넥센히어로즈의 단장을 맡은 후다. 대학동기인 이장석 전 넥센히어로즈 대표와 함께 현대유니콘스를 인수하며 스포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기업에 명칭권을 팔고 100여 개 스폰서를 끌어들이는 마케팅에 성공하며 5년 만에 넥센을 매출 300억원대의 탄탄한 구단으로 만들었다. 모기업으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데만 집중하던 국내 프로스포츠 업계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것이다.

이 때문에 조 대표의 지난해 ‘이직’은 화제가 됐다. 축구라는 생소한 공간에서도 마케팅에 성공할 것이냐가 관심이었다. 2008년 6만8000여 명의 도민 주주가 만든 강원FC는 자본금 90억원이 완전 잠식된 상태로, 올 초만 해도 ‘해체’ 목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조 대표는 “구단주인 최문순 강원지사의 적극적인 러브콜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FC가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는 1만800석 규모의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축구장. [사진 강원FC]

강원FC가 홈경기장으로 사용하는 1만800석 규모의 알펜시아 스키점프대 축구장. [사진 강원FC]

조 대표는 ‘강원 신드롬’을 폭발적인 선수 영입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국가대표 출신 공격수 이근호를 시작으로 오범석·문창진·김경중·이범영·황진성 등이 강원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과 최우수상(MVP)에 오른 스트라이커 정조국까지 가세해 ‘폭풍 선수 영입’의 정점을 찍었다. 조 대표는 “넥센에 있을 때부터 스타 마케팅의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개혁을 단행했다. 비용을 과감히 줄이고, 결재 과정을 투명하게 바꿨다. 한 해 90억원에 달하던 관리 비용의 25%를 줄였다. 조 대표는 “‘프런트가 쓸 돈을 선수단에 투자하자’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프런트 직원들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의 스키점프대 유휴공간을 활용한 축구장 건설은 ‘신의 한 수’로 꼽힌다. 도쿄 올림픽 사후 시설 활용을 고민하던 일본에서까지 시찰을 왔을 정도다. 조 대표는 “2018년 동계올림픽 이후 적자가 엄청날 것 같았다”며 “사계절 내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다가 우리 전용구장으로 활용하자고 강원도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LED 조명과 가변좌석을 갖춰 야간 경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라운드와 좌석 간 거리도 5~10m로 좁혀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린다.

인천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베트남 출신 쯔엉 선수를 영입한 것도 마케팅 전략의 하나다. 쯔엉은 베트남 국가대표 출신으로 베트남 최고 인기 스포츠 스타다. 쯔엉의 경기 출전이 늘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할 경우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한국에 진출하려는 베트남 기업의 스폰서 광고 유치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쯔엉 입단식이 1월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한베트남대사관에서 열렸다는 점도 눈에 띈다.

조 대표는 “스포츠 산업은 제조업”이라고도 강조했다. 색다른 해석이다. 그리고 자신을 ‘오프라인 콘텐트 제작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축구는 아직 1차 산업, 즉 ‘만드는 것’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일단 오프라인의 재미를 살려야 광고 유치, 콘텐트 판매 등 2·3차 산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나절 콘텐트’도 구상 중이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강원도 시·군 지자체가 축구장을 플랫폼 삼아 축제를 열도록 할 계획이다.

문제는 수익원 확보와 스폰서 영입이다. 프로구단의 수입은 입장료·마케팅·스폰서 수입 등으로 이뤄진다. 챌린지 무대에서 뛴 2016년 강원FC 예산은 67억원 가량이었다. 넥센에서 선보인 ‘저비용 고효율’ 경영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선수 영입을 고려하면 2017년에 200억원 가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3배 이상으로 예산이 늘어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조 대표는 지역 스폰서 확장을 위해 밤낮으로 뛰고 있다. 그는 “시멘트, 심층수 회사 등 강원도 연고 기업을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넥센 경영 시절처럼 ‘선수 수출’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야구는 선수들이 진출할 국가가 미국, 일본 정도지만 축구는 전 세계”라며 “축구의 경우 시장 규모가 최근 3~4년간 크게 성장하고 있고, 특히 한·중·일 3국간 ‘선수 교역’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또 “나도 실은 고비용 고효율 경영을 하고 싶다. 돈 많으면 더 많은 일을 벌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경영의 기본은 인풋의 최소화, 아웃풋의 극대화”라고 강조했다.

물론 조 대표의 광폭 행보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한 축구계 인사는 “과감한 투자가 성공적으로 나타나고 성적이 뒷받침된다면 K리그의 흥행과 재미에 큰 역할을 하겠지만 반대의 경우엔 K리그 전체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태룡 대표는…

● 1991년~ 동부제강
● 1997년~ 푸르덴셜생명 보험설계사
● 2003년~ 교보생명 압구정지점장
● 2005년~ 삼성생명 신설권역장
● 2009년~ 프로야구단 넥센히어로즈 단장
● 2016년~ 프로축구단 강원FC 대표

글=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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