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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은 1월이 끝물? 뭔 소리여 이제 좀 맛이 드는고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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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면


제철이 너무 앞당겨진다. 미디어와 성미 급한 사람들 때문이다. 오지도 않는 멸치 기사가 나오고, 익지 않은 감 아래서 입을 벌린다. 과메기는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말린다는데, 영상의 날씨가 이어지는 11월에 제철 뉴스가 나온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익어야 익은 것이다. 직접 가 보고 전문가적 안목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즐기면 된다. 진짜는 기다려야 온다. 그 현장에 박찬일 주방장이 나간다. 매달 가서 보고 확인하고 알맹이만 이 지면에서 전할 예정이다. 그런데 왜 제철이냐고? 맛있으니까. 진짜니까.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우리 몸에 들어가니까.


내가 일하는 식당에서는 12월까지 굴을 팔지 않는다. 11월부터 굴은 시중에 많이 깔린다. 국내 최대 생산지인 통영 경매장에서는 10월에 초매식(初賣式)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로 날씨를 헤아린다. 1월이면 아주 춥다. 그러나 바다가 차가워지려면 시간이 더 걸린다.


“아직도 굴 철이 일러. 수온이 높아. 올여름에 덥고 비도 안 와서 굴이 늦되유.”


충남 서산군 앞바다. 가로림만이다. 이 바다와 갯벌을 안고 사는 호리 마을 어촌계장 이은석(60)씨의 말은 좀 뜻밖이다. 아니, 도시 사람들은 굴이 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뭔 소리여. 이제 굴이 좀 맛이 드는고만.”


옆에서 이장 이강신(69)씨가 거든다.


이 간극이 멀다. 도시에선 이미 11월부터 굴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1월이면 끝물로 친다. 2월부터 식당에서 굴이 잘 안 나가기 시작한다. 3월에 굴 파는 식당은 거의 드물다. 3월도 제철인데!


“4월, 5월까지 굴은 좋아. 이런 수온이면 2, 3월에 최고여.”


상상을 부순다. 그렇다, 현장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때가 이른 날이다. 아침 일찍 마을 주민들이 서두른다. 오전 9시40분. 아낙들 일이다. 남자들은 굴을 옮기는 등의 지원 업무를 맡는다. 전원 갯벌에 투입. 손에 든 ‘장비’가 이색적이다. 낡은 전기밥솥에 줄을 매달았다. 여기에 캔 굴을 넣는다. 가볍고 튼튼해서 좋단다. 굴을 캐 가지고 올 그물망도 있다. 무엇보다 ‘조새’라고 부르는 도구가 눈에 든다. 길이 20㎝가량의 나무 자루에 반원형의 쇠날이 붙어 있다. 섬재기라고 부른다. 섬재기 한쪽으로 굴 껍데기를 까고 안에 든 통통하고 뽀얀 굴을 꺼내는 일은 자루 아래 붙어 있는 7㎝가량의 방우새다. 갯벌의 굴을 캐는 데 최적화되었다. 우리 민속 농어기구에 들어간다.


[삭풍이 후려쳐 체감온도는 시베리아]


“값? 6000원. 작년보다 1000원 올랐어.”

굴을 캐던 아낙의 설명이다. 여담인데, 인터넷에서도 판다. 해안가 어민의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굴은 물론 홍합도 캔다.


너른 갯벌에 굴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바위가 노출돼 있다. 이것이 바로 ‘석화(石花)’다. 꽃 핀 것 같다. 보통 패각 반을 벗겨 파는 걸 석화라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삭풍이 얼굴을 후려친다. 영하 10도인데 체감은 시베리아다. 장화가 푹푹 빠져 다리를 잡아당긴다. 공포가 밀려온다. 온몸을 꽁꽁 싸맨 아낙들의 조새질이 빠르다. 허리를 온전히 굽히고 일해야 해서, 엄청난 강도의 노동이다. 이런 일이 아낙들의 허리를 아프게 한다. 물때가 짧아 부지런해야 한다. 어촌계 소속 갯벌이므로 허락된 어민만 들어가서 조업할 수 있다. 이 마을은 쉰 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산다. 굴 작업 나오는 집은 열 집이 채 안 된다. 고되고 돈이 별로 안 된다. 아낙들의 고령화로 작업 인원이 부족하다. 한 망의 굴을 까봐야 1.5㎏ 정도의 알 굴이 나온다. 도매상에 넘길 양이 못 되고, 가정에서 소비하거나 택배로 판다. ㎏당 1만5000원 받는다. 날씨가 추워 굴이 얼었다. 살아 있는 굴이 어는 건 처음 본다.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지금이 썰물이잖어. 바람에 노출되니까 굴이 얼어. 그래도 죽진 않어. 다시 물이 차면 살아나. 굴이 아주 생명력이 강해.”


굴은 다채로운 방법으로 자란다.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남해안은 대개 수하식이 많다. 줄에 매달아 물 아래 내리는 방법이다. 양껏 물속의 먹이를 먹고 자라 크고 퉁퉁하다. 서해안과 가까운 남해안에서는 수하식도 하고 투석식이나 송지식을 한다. 투석식은 갯벌에 돌을 던져두고 거기 굴 종패를 붙이는 것이다. 송지식은 소나무 말뚝을 박아두고 역시 종패를 붙여 기르는 방식이다. 어느 굴이나 자연산과 양식을 가르기 애매하다. 사람이 얼마나 개입하느냐의 차이다. 이 마을은 투석식과 송지식, 완전 자연산이 혼재돼 있다. 종패를 일부러 붙이지는 않는다.


“7월께 굴이 산란해요. 포자가 바다에 떠다니다가 바위에 붙는 거지. 그 작업을 일부러 한다면 양식이 되는 거고. 여기 굴은 거의 완전 자연산이에요.”


굴로 돈 만들 궁리가 강하면 종패도 붙이고, 큰 돌도 갯벌에 부려두고 하게 된다. 이곳은 ‘방치’한다. 큰돈이 못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때 따라 잠겼다 드러났다 반복하니 굴이 잘다. 대신 맛의 집중도가 높다. 통영과 고성 등의 남해 굴은 우유를 품은 듯 입안을 꽉 채우는 풍성한 밀도가 있는 반면, 여기 굴은 감칠맛이 쿡쿡 찌르고 다닌다. 색깔도 좀 다르다. 굴 알의 뱃구레가 노랗고 날개가 까맣다. 보기에도 침이 넘어간다.


“우리 굴은 감장굴(검정굴)이라고 불러요. 값도 ㎏당 1000원을 더 받지.”


부녀회장(홍성경·58)의 설명이다.


굴 살집이 좀 큰 건 3, 4년생이라고 한다. 1년생은 작아서 안 딴다. 남해안 굴이 1년생을 주로 내다 파는 것과 비교된다. 확실히 남해안은 산업의 성격이 강하고, 서해안의 갯벌 굴은 어민들의 겨울 잔돈벌이 느낌이다.


이 마을은 굴 양이 적어서 따로 ‘박신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조새로 현장에서 바로 따오거나 통굴을 껍데기째 가져온 후 집에서 알 굴을 깐다. 한 망(10㎏) 까는 데 걸리는 시간은?


“테레비 보면서 하믄 한 시간 사십 분, 안 보고 하믄 한 시간 십 분쯤 걸려요.”


박신장이란 딴 통굴에서 알 굴을 꺼내는 작업장을 말한다. 통영에서 박신장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수십 명의 지역 아낙들이 모여 까는데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이른바 ‘도급’이어서 많이 깔수록 일당이 많다. 깐 굴 기준으로 ㎏당 3000원이 채 안 된다. 굴 값이 싸기 때문에 노동 비용도 싸게 지불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제일 굴 값이 싼 나라다. 게다가 깐 굴이 아주 싸게 유통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굴 한 접시 시키는 사람은 부자나 가능하다. 굴 아홉 개 놓고 30, 40달러씩 받는다. 굴 자체도 비싸지만 까는 노동 비용을 높게 치기 때문이다. 굴의 축복이랄까, 그저 우리는 많이 먹어둘 일이다.


서해안의 굴 중에 천북이 아주 유명하다. 축제까지 연다. 굴이 모자라 다른 데서 가져다 팔 정도다. 천북의 굴 중에 아주 독특한 것이 있다. 이른바 ‘굴밭’이다. 송지식으로 굴을 붙여 보다가 폐기하다시피 한 곳에서 스스로 굴이 자라 거대한 밭을 이룬 경우다. 바다 위 바위에 굴이 자라서 죽고, 그 껍데기가 쌓이고, 또 쌓이기를 반복하다가 아예 거대한 굴밭이 된 것이다. 굴 스스로 자라서 새끼 치고 동네를 만든 셈이다. 눈물 겨운 굴의 ‘생존사’다. 이 굴을 따서 파는 곳이 천북만에 일부 있다.

[굴물회 창자 끝까지 짜릿하게 내려가]


굴 작업을 마치고 굴 요리를 부탁한다. 부녀회장 홍씨가 직접 맡는다. 굴물회다. 서해안에서는 ‘굴탕’이라고 부른다. 끓이지 않은 물회인데도 ‘탕’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별로 안 쓰는 말이다. 시원하고 통쾌하다. 창자 끝까지 짜릿하게 치고 내려간다. 이 동네 남자들이 약주깨나 하시겠다. 해장으로 그만이다. 좋은 동치미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계절의 궁합이다. 동치미가 절정에 달하는 계절에 굴도 익는다. 그걸 서로 섞어 먹는다. 배·무·설탕·통깨 등을 넣어 시원하게 말아낸다. 홍씨의 솜씨가 그만이다.


“전 부쳐도 아주 좋은디. 그냥 먹는 게 최고고.”


서해안에서는 오래전부터 굴밥을 해 먹었다. 일종의 ‘구황음식’이었다. 쌀 귀하던 시절, 굴 캐다가 겨울에 흔한 무를 왕창 넣고 밥을 지었다. 쌀을 아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관광상품이 된 ‘영양굴밥’이다. 간월도 지역의 한 식당에서 대추·은행 등을 넣어 고급화 버전을 만들어 대박을 쳤다. 서해안 굴 산지는 어딜 가든지 비슷하게 만든다. 서산 시내 한 식당에서 굴밥을 시켰다. 영양굴밥이긴 한데, 무를 넉넉히 투박하게 넣어 맛이 좋다. 대추가 맛을 가리므로, 미리 빼달라고 해도 좋겠다. 굴 말고도 서산의 여러 맛이 한꺼번에 나온다. 급랭한 암게로 담근 게장에다 해풍에 말린 우럭에 새우젓과 두부를 넣고 끓이는 콤콤한 젓국, 지역 명물 어리굴젓도 맛나다.


굴 손질법도 물어본다.


“민물에 담가두면 서너 시간 만에 굴이 크게 불어. 이러면 커 보이지만 맛은 없어. 바닷물로 씻는 게 최고지만 집에선 연한 소금물에 가볍게 흔들어 씻는 게 좋아요. 요리? 날굴이 최고지, 암.”


역시 굴 먹을 줄 아는 주민이다. 부녀회장 홍씨의 지론이다. 갯벌을 다시 본다. 그새 물이 차올라 사라졌다. 커다란 스크린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이가 시리던 굴물회 맛이 혀에 남았다.


박찬일

제철의 맛, 박찬일 주방장이 간다 -1- 서산 가로림만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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