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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교과서 폐지한 뉴질랜드처럼 창의적 자율교육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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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14면

1년 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언했던 세계경제포럼이 올해 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 여파로 앞으로 3년간 컴퓨터·수학·건축·엔지니어링에서 200만 개 일자리가 증가하고 사무직·관리직·비숙련제조업에서 710만 개가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일자리 사정이 나라마다 다를 것이므로 개인과 학교와 기업과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개인 차원의 대응이다. 직업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며 살맛 나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김인 삼성SDS 고문은 “의식주 시대가 가고 의식주폰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으로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게임을 시청하던 한국인들은 4차 산업혁명을 실감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일자리 시장에 지진이 일어나고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으로 패러다임이 바뀐다. 평생직장은 정년을 보장받고 평생 한 곳에서 일하는 직장이며, 평생직업은 직장을 이동하며 평생 일을 하는 직업이다. 평생직업을 갖는 일은 결국 개인의 몫이므로 일터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더불어 확고한 직업철학을 갖춰야 한다.


로먼 크르즈나릭은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에서 벨기에의 29세 된 로라 반 보슈가 최적의 직업을 찾기 위해 1년간 여러 가지 직업에 도전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보슈는 패션 사진작가, 숙박업체 리뷰작가, 광고회사 창의 디렉터, 고양이 호텔 대표, 유럽의회 의원, 재활용센터 대표, 유스호스텔 대표를 거쳤다. 1년이 지난 뒤엔 음악행사 프로그램 기획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번다고 했다. 그녀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때마다 자기가 기대했던 기준과 일치하는 직업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직업철학이 없고 직업을 고르는 조건만 저울질했기 때문이다.


직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생계유지가 가능한 일,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일, 좋아서 즐길 수 있는 일, 사회 관계망을 얻을 수 있는 일, 지위와 권력을 얻는 일, 나라를 위하는 일, 그리고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하는 일이다. 모든 기준을 충족시키는 직업을 얻기는 어렵지만 직업철학이 뚜렷하면 자기에게 적합한 직장을 찾아서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다.


학교도 교육혁명으로 대응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직업인이 갖춰야 할 5가지 역량을 ‘비판적 사고, 문제해결, 창의, 협업, 디지털 문해’라고 제시했다. 여기에 인문학적 소양과 직업철학과 학습능력을 추가하고자 한다. 학교는 학생이 사회에 진출해 직업세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문·사·철과 문화예술교육으로 인문학 소양을 길러주고, 도전적 기업가 정신을 익힐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달달 외워서 정답을 찾는 객관식 평가로는 창의력을 기를 수 없다. 주입식 교육방법은 탐구식 교육방법으로, 암기식 학습은 자기주도적 협동학습으로, 객관식 평가는 주관식 평가로 바꿔야 한다. 교육내용과 방법과 평가를 바꾸는 혁명이 필요하다.


다음으론 기업 차원의 대응이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해야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원천기술을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한 4차 산업혁명의 대열에서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 원천기술이 없는 한국 기업에서 근로자가 열심히 일해 매출을 올릴수록 원천기술을 보유한 외국 기업의 근로자가 더 큰 보상을 받는 패러독스를 깨야 한다. 기업이 창의적인 원천기술을 개발하려면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 한다. 3M의 기술직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15%, 구글의 엔지니어들은 근무시간의 20%, 코닝의 연구자들은 근무시간의 10%를 자유롭게 사용해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한국 기업들도 자유를 줘 직원들의 창의성을 이끌어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는 학교와 기업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도록 자율을 돌려줘야 한다. 기업과 학교가 창의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산업정책과 대학정책을 주도했던 관성에서 벗어나 지능정보 시대에 맞게 민간 주도 개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뉴질랜드는 학교가 자율적으로 교육할 수 있도록 교육청을 폐지했고 교사가 역량 위주의 교육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과서를 폐지했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에 교육혁명을 단행했다. 인구 500만 명 규모인 뉴질랜드가 ‘교육부-교육청-학교’ 구조를 ‘교육부-학교’로 바꿨으면, 인구 5000만 명 규모의 한국도 ‘교육부-광역교육청-교육지원청-학교’ 구조를 개혁해 학교의 창의적 자율교육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몇몇 대선주자가 교육부를 해체하고 초당파적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는 교육문화부와 국가교육위원회로 역할을 나누어 책임지고 있다. 핀란드 교육문화부는 교육훈련 분야의 최고 행정기관이며, 정책과 법률과 예산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다.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는 영유아 교육과 돌봄, 유치원교육, 초·중 통합 기초교육, 일반고등학교와 직업고등학교 교육, 성인교육과 직업훈련을 담당한다. 전문대와 대학교육은 교육문화부의 책임이다.


한국에서 초당파적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려 한다면 이는 청년의 교육·고용·복지 문제를 복합적인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것에서 접근해야 한다. 유직결혼(有職結婚) 무직비혼(無職非婚) 시대에 청년은 직업이 있어야 결혼하고 출산하며 육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국무조정실급의 4차 산업혁명대책실을 설치해 청년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성인들은 직업 전환과 직장 이동이 쉽도록 일하다가 공부하고, 공부하다가 일할 수 있게 학교가 울타리를 개방해야 한다. 교육과 일자리 관련 부처를 재구조화해 ‘평생교육·평생직업체제’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영국과 덴마크는 6개월 동안 직업을 갖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의무적으로 직업 재교육을 한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다. 네덜란드는 청년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직업 재교육을 제공한다. 개발도상국 공적 원조 때 청년에게 직업 재교육을 해 해외 취업과 연계시키는 프랑스도 있다. 이런 정책에 주목해야 한다.


권대봉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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