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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잘못 붙은 DNA 꼬리표 떼내면 젊어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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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호 27면


희끗희끗 늘어난 새치, 슬금슬금 높아진 혈당, 얼룩덜룩 거친 피부, 모두 나이 탓이다.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까.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은 한반도 남해안 구석까지 불로초탐사대를 보낸다. 15세기 스페인 신대륙탐험대는 ‘청춘의 샘물’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동서양 모두 허탕이었고 허황된 꿈이라 여겼다. 21세기 첨단 과학은 마시면 젊어지는 샘물을 찾아낸 것일까. 2016년 12월 저명학술지 ‘셀(Cell)’은 마시는 약으로 늙은 쥐의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렸다고 보고했다. 비실비실하던 콩팥이 팔팔해지고 낡아빠진 털이 반짝반짝 빛나고 치솟던 당뇨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명이 40% 늘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수명 40% 늘게 만드는 방법 있나]


미 캘리포니아 솔크 바이오 연구소는 늙은 쥐를 대상으로 회춘을 실험했다. 이들 쥐에는 4개 ‘초기화'유전자가 태어날 때부터 삽입돼 있었다. 4개 유전자(Oct4·Sox2·Klf4· c-Myc)는 체세포, 예를 들면 피부세포를 초기화시켜 원시상태 줄기세포로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초기화 기술은 배양접시 속 세포이야기다. 세포가 아닌, 살아 돌아다니는 늙은 쥐도 초기화되어 젊은 쥐가 될까.


연구진은 사람 50세 해당 쥐들에게 4개 ‘초기화’ 유전자를 작동시키는 약을 주당 2일씩 3주 먹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쥐가 젊어졌다. 늙어서 꾸부정했던 척추가 꼿꼿해졌다. 쭈글쭈글한 피부가 펴지고 두텁고 거친 각질층이 어린 쥐처럼 보들보들 해졌다. 외모만이 아니다. 장기기능이 젊은 쥐처럼 좋아졌다.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세포면적이 4배 증가했고 혈중 포도당도 30%나 낮아졌다. 당뇨가 정상이 됐다.


세포로 만들어진 장기자체는 변했을까. 위·대장·지라·신장·심장을 검사했더니 노화현상, 즉 위 점막이 얇아지고 심장박동수가 줄어드는 증상들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세포 수준에서도 독소(활성산소) 생성이 줄었고 스트레스 저항성이 늘어났다. 몸이 젊어졌다면 그만큼 평균수명이 늘어났을까. 4개 초기화유전자가 작동된 그룹은 아무런 처리를 하지 않은 그룹 쥐들보다 수명이 40% 늘어났다. 4개 유전자를 작동시키면 세포 생체시계를 거꾸로 돌려 장기가 젊어지고 그만큼 오래 산다는 이야기다. 4개 유전자는 쥐에게 무슨 일을 한 걸까.


4개 유전자는 세포를 초기화시킨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면 이런저런 프로그램 오류가 생겨 처리속도가 느려지고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지 않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일종의 노화다. 하지만 컴퓨터는 ‘리셋’ 버튼을 누르면 공장에서 나온 초기상태로 돌아간다. 세포도 가능할까. 가능하다. 바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일본 야마나카, 영국 존 거든)을 타게 한 ‘역(逆)분화’ 줄기세포 방법이다. 이번에 밝혀진 역분화기술 핵심은 바로 DNA꼬리표 ‘제대로’ 떼어내기다.

[역분화 줄기세포는 DNA 꼬리표 떼어내기]
거든은 고교시절부터 엉뚱했다. 꿈이 과학자라는 그의 말에 당시 과학 선생은 “네가 과학자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십년 뒤 과학 선생은 양손을 모두 지져야 할 일이 생겼다. 거든 박사가 개구리에서 올챙이를 만드는 21세기 최고 기술(핵 치환)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보통 개구리 수정란은 계속 분열해서 특정 세포와 장기가 되고 올챙이, 개구리가 된다. 이른바 분화(分化)다. 심장근육세포처럼 한번 분화된, 즉 운명이 정해진 세포는 다시 수정란 상태로 돌아가면 안 된다. 심장세포가 본래 기능을 잃어버린다면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분화는 생체시계처럼 일방통행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든 박사는 이 상식을 뒤집었다. 개구리(A) 내장세포 유전자를 꺼내 핵(유전자)을 없앤 다른 개구리(B) 빈 난자 속에 집어넣고 분열시켜 올챙이(A), 개구리(A)로 만들었다. 분화가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 즉 역(逆)분화도 가능함을 최초로 증명했다. 이 원리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다. 즉 양의 유방세포에서 핵을 꺼내 다른 양의 빈 난자에 집어넣었더니 수정란처럼 자라나서 복제양 돌리가 태어난 것이다.


빈 난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어서 분화가 끝난 유방세포를 수정란 같은 원시상태로 생체시계를 돌린 걸까. 과학은 그 답을 찾았다. 빈 난자역할을 하는 4개 ‘초기화’ 유전자(OSKM)를 발견해냈다. 4개 유전자를 세포 내에서 작동시키면 마치 컴퓨터 리셋버튼처럼 세포가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 이른바 원시상태 역분화 줄기세포다. 그렇다면 늙은 세포는 젊은 세포와 무엇이 다른 걸까. 리셋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노인이 어린 아이가 되는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2009)의 주인공 벤자민(브래드 피트 분)은 80세 몸으로 태어나서 점점 젊어진다. 세월이 상행선 기차라면 벤자민은 하행선 기차인 셈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데이지를 만났다. 하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마주 오는 기차처럼 아주 짧았다. 이 영화는 조로증(早老症)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조로증은 핵 유전자가 비정상인 희귀질환으로 정상인보다 7~8배 빨리 늙는 병이다.


늙는다는 것은 세포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오래 쓴 컴퓨터처럼 프로그램이 잘못 얽히는 걸까. 이번 ‘Cell’ 연구에서는 빨리 늙어버린 조로증 쥐와 정상 노화된 쥐를 사용했다. 두 종류 쥐 모두 4개 유전자를 작동시키면 두 종류 쥐가 모두 다시 젊어졌다. 왜 다시 젊어진 걸까. 답은 잘못된 DNA 꼬리표를 떼어냈기 때문이다.


꼬리표는 수정란이 분화되면서부터 DNA에 달라붙는다. 뇌세포가 될 놈은 뇌세포에 필요한 유전자만을 켜고 다른 것은 모두 꺼져 있어야한다. 켜고 끄는 ‘온·오프(On·Off)’는 DNA에 달라붙는 꼬리표(메틸기, 에틸기)와 히스톤 단백질로 결정된다. 많이, 세게 달라붙어 있으면 유전자가 꺼진 ‘Off’ 상태가 된다. 어떤 세포로 평생 살 것인가는 결국 DNA 꼬리표로 결정된다. 심장·뇌·간·췌장 세포의 DNA 순서는 모두 같아도 DNA 꼬리표는 각각 다르다. 따라서 꼬리표를 떼어버리면 뇌세포, 심장세포는 모두 초기상태인 역분화 줄기세포가 된다. 꼬리표를 떼어내는 일은 4개 유전자가 한다.


심장세포는 처음 주어진 DNA 꼬리표대로 심장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서 심장을 ‘쿵쿵’ 잘 돌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꼬리표에 문제가 생긴다. 먹는 음식, 외부 환경, 스트레스, 담배, 술 등으로 꼬리표가 더 붙거나 구조가 변한다. 꼬리표가 변하니 ‘On·Off’가 멋대로 변한다. 그 결과 심장세포 내 물질들이 변한다. 결국 심장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이른바 노화다. 잘못된 꼬리표는 살면서 점점 늘어난다. 더불어 각종 병이 생긴다. 살면서 생기는 문제로 DNA 꼬리표가 변하고 유전자 On·Off가 변한다는 소위 ‘후성유전학(epigenetic)’이다. 후천적 환경에 의해서도 유전자가 변한다는 후성유전학이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꼬리표지도가 제2의 인간게놈지도]
전립선암은 남성 6명 중 1명이 걸린다. 전립선암 환자 90%는 암억제 유전자에 많은 꼬리표가 붙어있다. 대장암·유방암·자궁경부암도 암 생성 관련 유전자에 꼬리표가 비정상으로 많다. 암뿐만이 아니다. 당뇨성 망막질환, 외상 후 스트레스, 정신분열증도 핵심유전자 꼬리표가 정상과 다르다. 허혈성 심장질환, 심근경색 발생가능성은 특정유전자(LINE-1) 꼬리표 검사로도 미리 알 수 있다. 현재 DNA 꼬리표를 떼어내는 림프암 치료제가 미국 식품 의약안정청(FDA)승인을 받았다. DNA꼬리표는 어느 정도 떼어내야 하나.


꼬리표를 완전히 떼면 세포는 완전초기상태인 수정란 상태가 된다. 고삐 풀린 망아지다. 이번 연구에서도 많이 떼어내자 세포가 제멋대로 자라 암이 발생, 쥐들이 조기사망 했다. 연구진은 떼어내는 정도를 4개 유전자 작동 시간으로 조절했다. 살면서 잘못 붙은 꼬리표는 떼어내되 처음에 붙여진 정상 꼬리표는 놔두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DNA 꼬리표 지도를 확실히 작성해야 한다. 꼬리표가 ‘제2게놈’이다. 이번 연구대상은 쥐다. 태어날 때부터 작동조절이 가능한 4개 유전자를 삽입했다. 사람에게 이 방법을 직접 적용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이 방식을 적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생체시계를 돌리는 방법은 확실히 알았다. 늙으면서 잘못된 DNA꼬리표를 ‘제대로’ 떼어내면 젊어지고 수명이 늘어난다. 인간수명은 몇 살까지 늘어날까.


미 매사추세츠 폭스보로 고등학교 샘 번스는 선천성 조로증 환자다. 그의 몸은 90세지만 마음은 또래 아이처럼 17세다. 그는 고교밴드에서 드럼을 치고 싶었다. 몸무게 18㎏에 맞도록 드럼을 작게 만들고 친구들 도움으로 고교밴드 공연 꿈을 이루었다. 17세로 생을 마감하기 전, 테드(TED)토크에서 그는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나는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아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아 달라’. 카뮈는 “인간은 살 이유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고 했다. 삶의 길이는 과학, 깊이는 우리 몫이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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