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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작가는 칼 한 자루 쥐고 밤길 가듯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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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소설가 이응준(47·사진)씨가 첫 산문집을 냈다. 『영혼의 무기』(김영사)라는 800쪽이 넘는 분량이다. 2015년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최고의 작가’ 신경숙의 일본소설 표절 의혹을 제기해 파란을 불렀다. 그 후유증에서 사실은 고발자도 자유롭지 못했을 터. 산문집의 성격을 설명하며 ‘이설집(異說集)’ ‘백병전의 수기(手記)’ 같은 단호한 느낌의 수식어를 사용했다. 책에는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같은 무거운 제목의 글도 있지만 뜻밖에 술술 읽힌다. 이씨 문장의 힘일 게다. 24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책이 벽돌 두께다. 요즘은 짧아야 읽힌다.
“나는 1970년생이다. 스무 살에 등단했다. 뼛속 깊이 20세기 작가다. 가벼운 신변잡기가 아니라 신문칼럼이나 그동안 썼던 정치나 문화평론 같은 묵직한 글을 묶어 구색 갖춘 산문집을 만들고 싶었다. 나 죽은 다음에라도 작가 이응준에 대한 하나의 사료로 도서관에 남는 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두터워졌다.”
20세기 작가는 요즘 작가와 다른가.
“21세기 작가는 더 이상 과거의 작가가 아니다. 과거에는 작가가 철학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일종의 사제 역할을 했다. 사회 병리나 인간의 불안 등 모든 문제를 작가에게 물었고 그에 답하는 게 작가의 권리이자 의무였다. 요즘에는 누구도 작가에게 그런 걸 묻지 않는다. 내게 재미있는 얘기를 해봐, 아니면 가!, 이런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이미 죽었다.”
페이스북 글도 묶었는데.
“어쩌다보니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게 됐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실존적 상황에 처한 결과다. 그 과정에서 산문집 제목처럼, 글쓰기는 내게 영혼의 무기 같은 행위였다. 불교의 염불이나 독경처럼 삶을 견디고 현실과 싸우는 무기 말이다. 이 책이 독자에게도 하나의 위로, 영혼의 무기가 되면 좋겠다.”
많은 글이 실렸는데, 독자에게 한 편을 추천한다면.
“책 뒷날개에 ‘과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제목의 글 전문을 실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고 수시로 자책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사실 자존심은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사람 망친다. 너무 자의식이 강하면 괴롭고 힘들어진다. 요즘 그걸 다스려 편해지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편해질수록 타인에게도 편한 사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고민이 담긴 글이다.”
이어령 선생이 추천사를 썼다.
“지금까지 열댓 권의 책을 냈는데 항상 최고의 문인들로부터 추천사나 해설을 받았다. 그런 대목에서도 싸구려라는 소리 듣기 싫어 일종의 ‘인감증명’을 떼놓은 거다. 천하의 이어령 선생님 추천글을 받고 싶어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써주셨다. 표절 의혹 제기 전에 받아둔 거다.”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표절 의혹을 제기한다고 했었다. 한국문학은 여전히 침체기인 듯한데.
“18세기 계몽주의, 산업혁명의 등장으로 1000년 중세 역사가 깨졌다. 세상의 패러다임이 확 바뀌었다. 지금이 딱 그런 시기다. 커다란 변화의 곡선 위에 서 있는 형국인데 너무 곡선이 크다보니 사람들이 직선으로 착각한다. 5년, 10년 뒤에 뭐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만약 시스템을 보험처럼 여겨 의지했다가는 반드시 거지 된다. 이 시대 작가는 칼 한 자루 쥐고 밤길 가는 심정으로 저벅저벅 가야 한다. 멧돼지가 나오든 강도가 나오든 때려잡는다는 마음으로, 20세기의 고민과 21세기의 현실을 종합해 새로운 전략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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