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성장하는 벤처, 아직 배가 고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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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정 준
벤처기업협회 회장
㈜쏠리드 대표이사

15세기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은 스페인을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시켰고, 유럽인들의 활동무대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됐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물론 본인의 비전과 도전정신이 출발이었지만, 이를 실현케 한 것은 이사벨 여왕의 지지와 투자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사벨 여왕의 지원이 없었다면 콜럼버스는 항해를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신대륙의 발견은 세월이 더 많이 흐른 다음에야 일어났을 것이다.

중국, 작년 투자 51조원…2배 늘려
한국 2조원 투자했지만 역부족
민간 참여 유도할 제도 마련을

벤처 창업을 한다는 것은 신항로를 개척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모험이다. 그 과정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 이때, 창업가와 비전을 공유하고 투자를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함으로써 이사벨 여왕과 같은 존재가 되어 주는 것이 벤처캐피탈이다. 실제로 큰 성공을 거둔 수많은 스타 벤처기업들 뒤에는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듯한 그들의 과감하고 도전적인 생각과 비전을 공유하며 같이 길을 걸었던 벤처캐피탈들이 항상 있다.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지난해 한국의 벤처펀드 조성액이 사상 최대치인 3조2000억원에 달했고 벤처 투자액도 2조1000억원을 넘어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벤처펀드 조성액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넘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벤처투자 시장에 대한 활발한 민간자본의 참여 증가다. 특히 민간자본 중 선배 벤처기업의 출자액이 급증하고, 이들이 신설하는 벤처캐피탈 회사의 수도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올해 초 네이버에서는 7000억원 규모의 벤처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미래에셋에서도 선배 기업들과 함께 매년 1조원 규모의 벤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향후 선배 기업의 재투자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선배기업의 참여가 모여서 한국의 벤처 창업 선순환 생태계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전체 벤처투자액의 양적 증가와 함께 작년 벤처투자를 받은 기업의 절반 정도가 창업한 지 3년 이내인 창업초기기업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의미 있는 부분이다. 물론 투자금액 측면에서는 아직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지만, 모험자본으로서의 벤처투자가 질적인 측면에서도 조금씩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각에서는 벤처펀드의 규모가 한국 벤처기업의 수나 역량 등을 고려할 때 너무 과도하게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벤처투자는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에 벤처기업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5년 전세계 벤처투자액은 약 158조원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2014년보다 45%나 늘어난 수치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벤처투자 절대 금액은 여전히 벤처투자가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미국이 약 67조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하지만 증가율 기준으로 보면 그 전 해에 비해 무려 2.5배나 늘어난 51조원을 투자한 중국이 단연 1등이다. GDP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의 2조원 벤처투자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더욱 의미 있는 비교는 벤처기업당 평균 투자금액인데, 한국의 경우 대략 20억~3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이는 미국이나 중국의 기업당 투자금액의 10분의 1 내지 20분의 1정도다. 한국의 벤처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다른 벤처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기업당 투자금액을 얼만큼 더 키워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올해도 우리는 “2017년 역대 최고의 벤처펀드 조성과 벤처투자”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목표가 구호에만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벤처펀드 조성에 앞장서야 하며, 에인절과 벤처투자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민간자본의 참여를 더욱 유도할 필요가 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벤처기업의 도전이 과감한 벤처투자와 함께 할 때, 우리의 벤처기업이 콜럼버스처럼 신대륙을 발견하고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쏠리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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