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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대국의 이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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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8면


자칭 ‘중국’이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빨을 드러냈다. ‘가운데 나라(中國)’ ‘큰 나라(大國)’, 이 모두를 합쳐 ‘중화(中華)’라 한다. 음식점 상호 같지만 살 떨리는 말이다.


‘중’은 중심이고 ‘화’는 문화다. 한(漢)이 세상의 중심이며 가장 발달한 문화라는 주장이다. 자연스럽게 여기서 주변 동서남북은 야만적인 변방이라는 화이(華夷)사상이 나온다. 천자(天子)는 하늘을 대신해 야만을 교화하고 세상의 질서로 다스리는 사람이다. 따라서 ‘천하국가(天下國家)’의 ‘왕화(王化)’는 중원은 물론, 변방까지 왕의 은혜를 입는다고 말한다. 왕화의 대상이니 결국 야만족도 중화가 거느린다는 것이다. 중화가 문화, 야만은 울타리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국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권을 갖는 모든 나라는 수평적 관계다. 하지만 청(淸)나라는 다른 나라에 바닥에 엎드려 황제에게 절하는 고두(叩頭)와 조공을 요구했다. 외국과의 통상은 모두 ‘조공(朝貢)’이라 했다. 그러다 아편전쟁의 패하며 수평적인 통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1980년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부터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후진타오의 화평굴기(和平?起)까지 모두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렇다. ‘중화’는 결코 죽지 않는다. 말투만 바꿨을 뿐이다.


현대 조공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은 말할 것 없고 지원 및 통상을 원하는 아프리카 나라까지 ‘하나의 중국’을 선언하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수단에까지 조건을 걸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만 총통과 한 전화는 그래서 청천벽력이었다. 미국이 중국의 조공체계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 카리브해의 영연방 국가 세인트루시아가 대만을 주권국가로 인정했다. 이에 격분한 중국은 적반하장으로 세인트루시아를 ‘내정간섭’이라 공격했다.


중국의 실제적 정체성을 만든 건 당(唐)제국이었고 현대 자본주의 중국의 역사적 모델 역시 당나라다. 당나라 때 가장 큰 국제 무역항은 광저우(廣州)였고 가장 화려한 상업도시는 양저우(揚州)였다. 당 말엽, 두 도시의 외국상인 대부분은 부유하다는 이유로 학살당한다. 구리로 만든 불상은 동전으로 변했고 모든 자유사상은 유교(儒敎)로 일통했다.


‘참고 기다린’ ‘화평’은 부국강병으로 변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리다. 중국의 통상보복은 제 입술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다. 다시 중화를 위한 야만, 대국에 딸린 소국으로 복귀하라 한다. 조공을 바치고 망극한 성은을 갚는 입술이 되어 울타리 노릇을 하라고 윽박지른다(??逼人). 시진핑의 이빨에서 당 말 파괴의 그림자가 보인다. 기우였으면 한다.


이호영 현 중앙대 중앙철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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