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북 압박 가시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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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불법 자금 거래 차단 의지는 지난해 9월 가시화했다. 4차 6자회담이 열리던 와중이다. 미국은 북한이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을 통해 위조 달러 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판매 대금 등을 세탁해 자금 조달을 해 왔다는 이유로 자국 금융기관들에 이 은행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했다. 자국 애국법에 따른 조치다.

이후 마카오 의회가 돈세탁 방지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 은행은 북한과의 거래 계좌를 동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계좌는 북한 노동당 서기실(비서실)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11월의 5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상적인 법 집행 절차라는 입장을 폈다. 이 회담이 차기 회담 일정도 잡지 못하고 끝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은 그만큼 피해가 크다는 방증이다.

미국의 재무부 대표단이 지난주 마카오 외에 홍콩.베이징(北京)에 들른 것은 북한의 불법 활동을 확인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대표단이 우리 정부에 불법 자금 차단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것은 사안이 심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대북 자금 거래 동결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스위스 은행까지 '불량 국가'와 거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량살상무기 거래를 막기 위한 조치는 2003년 6월 부시 행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을 제안하면서 본격화했다. 북한과 이란 등을 겨냥한 국제 공조체제 구축 작업이다. 미국은 이 체제를 통해 대량살상무기 거래를 차단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 현재 70여 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줄곧 우리 정부의 동참을 요구해 왔다. 우리 정부가 최근 PSI의 부분 참가를 통보한 것은 미국의 요구와 국제사회 흐름을 무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가 부분 협력하기로 한 것은 북한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결국 미국과 북한 모두를 저울질한 결과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SI 공개 참가는 남북 관계에 파장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

6자회담 재개 여부를 전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그동안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북한 위폐 문제와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미 행정부 내 조율과 관계국 간 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오영환.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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