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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육즙 살릴 250도 지켜라…무쇠·곱돌·석쇠 중 승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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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불판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고기를 더 맛있게 먹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특히 최근 등장한 고기구이 전문점,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불판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처럼 가는 알루미늄 가닥을 이용한 불소식당의 실실이석쇠. [사진 김경록 기자]

불판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고기를 더 맛있게 먹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특히 최근 등장한 고기구이 전문점,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불판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처럼 가는 알루미늄 가닥을 이용한 불소식당의 실실이석쇠. [사진 김경록 기자]

연기 자욱한 식당 안. 수십 개 테이블에서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또 탄다. 식당 점원들은 수시로 불판을 갈아준다. 해외 어디를 가도 보기 힘든 한국 고깃집 풍경이다. 테이블에 불을 피우고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구워먹는 ‘구이 강국’답게 불판도 가지각색이다. 무쇠로 만든 솥뚜껑, 실처럼 얇은 석쇠, 치즈를 구워 먹고 찌개용 뚝배기를 얹도록 홈을 판 이색 불판까지. 모양만 다채로운 게 아니다. 고기를 맛있게 굽기 위한 최적의 불판 온도를 연구하는 등 과학까지 동원한다. 돼지구이 프랜차이즈인 하남돼지집 김동환 본부장은 “2㎝ 두께의 삽겹살을 섭씨 500도에서 초벌한 뒤 200~230도 화로에서 다시 구워 먹는다”며 “많은 실험을 통해 터득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채식 위주가 한국인의 식습관이라고 말하기 무색하게 한국인의 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연간 1인 평균 51.3㎏의 육류를 소비(2014년·농림축산식품부)한다.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63.5㎏)에 비해선 적지만 1980년(11.3㎏)보다는 5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돼지고기만큼은 한 해 평균 24.4㎏로 OECD 평균(21.9㎏)보다 많이 먹는다. 집에서도 즐겨 먹지만 식당에서 사 먹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돼지고기 소비량의 46%, 소고기의 23%가 외식에서 나온다.

불판도 유행을 탄다. 고기 종류·부위·조리법 등이 다채로워지면서 그에 어울리는 온갖 모양의 불판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탑주방]

불판도 유행을 탄다. 고기 종류·부위·조리법 등이 다채로워지면서 그에 어울리는 온갖 모양의 불판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탑주방]

이렇게 육류 소비량이 늘고 고기 구이 프랜차이즈가 성행하면서 고기 품질과 조리법뿐 아니라 최근 불판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식당이 많아졌다. 직접 개발한 스탠드형 구이기를 쓰는 돼지구이 프랜차이즈 철든놈이 대표적이다. 철든놈 이찬솔 대리는 “훈제로 굽는 방식이어서 기존 고깃집 불판과 달라 금세 입소문이 났다”며 “구이기에서 연기가 거의 안 나고 기름이 잘 빠져 건강에도 좋다”고 말했다.

고기맛 좌우하는 불판의 과학
고기 종류·부위·두께 따라 골라야
혼밥족 많아져 1인용 화로도 늘어
300도 넘으면 순식간에 수분 빠져
“불판보다 열 조절이 중요” 의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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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에서 음이온·원적외선 등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곳까지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은 아니다. 다만 불과 열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지는 건 사실이다. 불판은 팬과 석쇠,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불판의 재질은 알루미늄부터 무쇠·돌·옥·황동 등 온갖 것이 쓰인다. 팬은 전도열을 이용해 고기를 바삭하게 굽지만 기름기가 빠지지 않는 게 단점이다. 석쇠는 전도열과 화로에서 발생한 복사열을 함께 이용해 고기를 굽는다. 이른바 ‘불맛’이라고 하는 훈연 향을 고기에 입히기 위해 석쇠를 이용한다. 김욱성 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쿨 교수는 “팬과 석쇠 중 어떤 불판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며 “고기 종류·부위·두께에 따라 적합한 불판이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요즘 고기구이집에서는 ‘실실이석쇠’를 많이 쓴다. 석쇠 두께가 0.8㎜로 기타 줄처럼 가늘다. 전도열보다 복사열로 고기를 구워 고기가 눌어붙지 않고 은근히 익는다. 석쇠가 가늘어 세척하기에도 편하다. 단 삼겹살처럼 지방이 많은 고기를 굽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기름이 많이 떨어져 숯불을 관리하기 어려워서다. 그램그램·불소식당 같은 소고기구이 전문 프랜차이즈에서 이 석쇠를 많이 쓴다.

일인용 화로

일인용 화로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의 유행과 혼밥 문화의 확산으로 일인용 화로도 식당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식 고기구이 야키니쿠(燒肉) 전문점에서 많이 쓴다. 주방용품 전문점인 서울 황학동 주방뱅크 김우석 실장은 “기존 불판보다 화력이 약해 두께가 얇은 소고기나 해산물·채소를 구워 먹는 정도”라며 “고기 맛보다 분위기를 중시하는 식당에서 인기”라고 설명했다.

최근 생겨난 고깃집들이 불판에 신경을 쓰는 건 고기 굽는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하남돼지집 외에도 적외선 온도계를 쓰는 식당이 많다. 제너시스BBQ에서 운영하는 소고기구이집 소신275도씨는 소고기가 가장 맛있게 익는다는 275도로 불판을 관리한다. YG푸드에서 운영하는 삼거리푸줏간은 250도로 가열한 장수곱돌 불판에 돼지고기를 천천히 구운 뒤 손님이 먹기 좋게 잘라준다. YG푸드 조은별 대리는 “장수곱돌은 예부터 맷돌로 쓰던 자연석으로, 화학처리를 하지 않았다”며 “불판의 열 전도율이 좋아 고기 표면이 갈색빛을 띠며 노릇노릇하게 익는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이 잘 일어나 고기가 더 맛있다”고 말했다.

고기는 섭씨 200도 이상 달궈진 불판에 구워야 육즙이 빠지지 않아 맛있다. 적외선 온도계로 불판 온도를 측정하는 모습. [사진 하남돼지집]

고기는 섭씨 200도 이상 달궈진 불판에 구워야 육즙이 빠지지 않아 맛있다. 적외선 온도계로 불판 온도를 측정하는 모습. [사진 하남돼지집]

불판 온도를 내세우는 게 마케팅 기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약 250도가 고기를 익히는 데 적합한 온도라는 데에는 전문가들도 동의한다. 차경희 전주대 한식조리학과 교수는 “고기는 적절하게 데워진 불판에 올려야 표면이 굳어지면서 육즙을 가둘 수 있는데 그게 약 250도”라며 “고기구이집에서 값비싼 온도계를 쓰는 건 고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목적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돼지고기 전문점 삼거리푸줏간의 장수곱돌 불판. [사진 김경록 기자]

돼지고기 전문점 삼거리푸줏간의 장수곱돌 불판. [사진 김경록 기자]

한국인 특유의 고기 먹는 방식 때문에 불판 온도 제어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불판 제조업체인 서전테크 임서현 대표는 “고깃집에선 단체로 식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 고기를 타지 않게 관리하면서 먹는 게 쉽지 않다”며 “불판 온도를 약 250로 유지하는 건 고기가 타서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불판이 300도 이상 달궈지면 고기가 순식간에 타고 수분·유분이 빨리 빠진다”고 덧붙였다.

무쇠팬

무쇠팬

유서 깊은 고깃집들은 온도계를 쓰진 않아도 오랜 경험으로 각기 주력으로 파는 고기에 가장 어울리는 불판을 쓰고 있다. 소 등심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홍익동 대도식당은 무쇠 팬을 고집한다. 양념갈비가 인기인 서울 신사동 삼원가든은 고기가 숯 향을 머금도록 홈이 나 있는 황동 불판을 쓴다. 30년 역사의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 은주정(주교동)은 무쇠로 만든 솥뚜껑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대도식당 조성춘 지배인은 “고기의 품질(1+ 이상), 숙성 방식도 노하우가 있지만 반세기 동안 고집한 무쇠 팬은 대도식당의 상징과 같다”며 “무쇠 팬은 무겁고 녹이 잘 슬어 관리하기 어렵지만 소등심과 궁합이 잘 맞아 최근 생긴 소고기 프랜차이즈에서도 비슷한 팬을 쓴다”고 설명했다.

불판도 유행을 탄다. 고기 종류·부위·조리법 등이 다채로워지면서 그에 어울리는 온갖 모양의 불판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탑주방]

불판도 유행을 탄다. 고기 종류·부위·조리법 등이 다채로워지면서 그에 어울리는 온갖 모양의 불판이 등장하고 있다. [사진 탑주방]

불판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기구이 전문점들이 경쟁적으로 불판을 개발하고 있을 뿐더러 미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고기 요리와 그에 따른 조리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김욱성 교수는 “다양해진 고기 요리에 걸맞게 불과 열을 활용하기 위한 고민이 중요하다”며 “결국 고기 맛을 좌우하는 과학이란 불판 자체보다 열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강조했다.

글=최승표·송정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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