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위폐 암초' 넘어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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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조 달러와 관련, 미 재무부의 브리핑이 23일 외교통상부 상황실에서 열렸다. 미 재무부 부차관보 대니얼 글레이서(왼쪽)와 김숙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이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가 고비를 맞았다. 홍콩.마카오.베이징을 상대로 한 미국 재무부 대표단의 북한 위조화폐.돈세탁 사건 조사 활동이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 테러 금융 및 금융 범죄 담당 부차관보를 비롯한 대표단이 23일 외교통상부를 방문했다. 그동안의 조사 내용을 한국 정부에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조사단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재무부의 조치가 제재(sanction)의 성격이 아니라 미 금융기관과 금융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취해진 순수한 법 집행 조치"라고 밝혔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 제재가 계속되는 한 6자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지난해 11월 선언했다. 그래서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미 행정부가 어떤 방침을 정하느냐에 따라 6자회담의 운명이 걸린 셈이다.

현재로선 낙관론이 조금 우세하다. 중국의 적극적 역할 때문이다. 중국은 마카오 등에서의 북한 불법 자금 거래가 국가 범죄가 아닌 회사.개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중재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불법 활동이 있었음을 인정해 미국의 입장을 살려주면서도 북한의 해외 자금줄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을 막는 방안이다.

중국은 24~25일 방중하는 로버트 졸릭 미 국무부 부장관과 이 문제를 집중 협의한다. 이 자리에서 미국이 북한의 불법 자금 거래 차단과 관련해 확전 의사를 밝히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이 추진 중인 이란 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에 대한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다녀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의 체면을 구기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불법 자금 거래 문제를 6자회담 틀 내의 북.미 양자회담에서 다룰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 안에서는 2월 중.하순 6자회담 재개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아직 어느 나라도 구체적 회담 날짜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 생일(2월 16일) 이후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도 없지 않다. 미 재무부 대표단 귀국 후 미국 내 의사 결정 과정에서 대북 강경파가 이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화 루트가 차단된 북한의 반발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6자회담 재개 여부는 관계국 간 물밑 협의가 끝날 다음주께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박승희 기자 <pmaster@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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