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민주화 시위 확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국과 인도 접경의 히말라야산맥 지대에 위치한 '은둔의 왕국'네팔에서 민주화 시위가 번지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민주화와 국왕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야당 주도 아래 총파업이 벌어지면서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해 2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네팔의 정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2001년 디펜드라 왕세자의 궁정 총격으로 왕과 왕비 등 10명의 왕족이 사망하는 참극 와중에 권력을 잡은 갸넨드라 왕은 지난해 2월 의회를 해산하고 친정 체제를 굳히면서 네팔의 정국 불안은 지속돼 왔다.

23일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마오쩌둥(毛澤東)의 노선을 추종하는 공산 반군과 정부군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정부군 6명과 반군 17명이 숨졌다. 정부군의 한 관계자는 "21일 밤 카트만두 남쪽 160㎞ 지점에 위치한 프하파르 바디 마을에서 반군이 순찰 중이던 정부군을 공격해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야당 세력은 갸넨드라 왕이 물러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며 퇴진 압력을 가하고 있다. 네팔 공산당의 마드하프 쿠마르 총서기는 "왕이 물러나고 권력을 국민에게 넘길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7개 야당으로 구성된 국민행동협력위원회(CPMCC)는 19일 총파업을 시작으로 카트만두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주화 시위를 촉구해 왔다. 이는 경찰이 국왕 퇴진 요구를 봉쇄하기 위해 야당 지도자를 가택 연금하고 학생 운동 지도부 등 200여 명을 구금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측은 "공산 반군이 민주화 시위를 악용해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야당 진영은 "독재를 중단하라. 우리는 민주화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갔다.

경찰은 21일부터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 진압에 나서 300여 명을 체포했다. 돌을 던지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죽봉을 휘둘러 시위대 50여 명이 크게 다쳤다.

사태가 악화하고 있지만 갸넨드라 왕은 아직까지 정치적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갸넨드라는 지난해 2월 "의회가 공산 반군의 활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야당이 국가 전복을 꾀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의회를 해산하고 친정에 들어가 절대권력을 행사해 왔다. 이후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커지자 갸넨드라 왕은 최근 "2008년까지 권력을 의회에 이양하겠으며, 다음달 8일 지방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야당은 "왕의 전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만적 술책"이라며 계속 대치해 왔다.

현지 언론들은 "시위대의 요구를 왕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저항으로 경찰의 유혈 진압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 외교관들은 "지난 1년간 야당 세력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인 탄압이 자행됐고 국왕 추종세력이 지방정부와 군의 요직을 장악하는 등 민주주의가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