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당한 "위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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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1일 하오2시 서울한강노2가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서울버스지부 회의실.
지부측이 조합장 회의를 열어 협상결과를 보고하고 있었다.
『당초 약속대로 28·4%의 임금인상을 고수하지못해 실망이 크시겠지요. 그러나 1천만 서울시민의 발을 묶을수는 없었읍니다』김우삼지부장 (60) 의 인사말.
이어 이틀간의 철야 마라톤협상에 지칠대로 지친 협상대표가 결과보고를 시작하는순간 『어용노조 집어치워』라는 고함.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협상결과를 갖고 회사로 돌아갔다가는 조합원들에게 맞아죽습니다. 협상결과를 거부하든지 아예 이곳에서 철야농성을 벌입시다.』 10여분뒤 가까스로 속개된 회의는 「협상안거부」 일색.
『우리는 협상전권을 여러분으로부터 위임받았습니다. 임금 10% 인상을 11%로 끌어올리려고 노동부장관에게 큰절까지 했읍니다. 서명까지 마친 타결내용을 번복할수는 없읍니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김지부장은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고,『민주화 물결속에 우리는 법에따라 노동쟁의 절차를 밟았고 이때문에 국민들의 호응을 얻은 것이 아니냐』고 설득했다.
하오4시20분 1차회의 산회가 선포되었는데도 조합장들은 자리를 뜰줄 몰랐다. 협상대표를 감금하다시피한채 회의실문에 바리케이드까지 치는등 반발했다.
하오6시40분 2차회의. 협상대표의 어떤 설득에도『파업을 통해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는 논리와 『임금인상에 관계없이 파업강행이 조합원들의 분위기』라는 한 조합장의 고백이 장내를 주도했다.
노사간의 대립보다도 더 험한 노-노간의 의견차에 김지부장은 끝내 얼굴에 경련을 일으키며 졸도했다.
김지부장의 졸도까지「쇼」라며 병원후송을 가로막던 서울시내버스 조합장들은 22일0시10분 51명이 파업을 결의했다.
20여명의 버스운전기사들이 지부사무실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파업에 서명한 조합장들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묘한 표정속에 각자 회사로 떠났고 이를 지켜보는 취재진들도 자기들이 뽑은 대표를 인정치 않는 노-노의 불신에 노사분규타결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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