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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반 연합이 총리 지명 vs 민주당과 총리 인선 협의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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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12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여러 개선 방안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특히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지면서 민주적 절차가 생략된 채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현행 권력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은 ‘분권’과 ‘협치’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국회가 선출한 총리에게 내치를 맡겨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이를 통해 대통령과 총리, 여당과 야당의 협치를 도모하자는 주장이다.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으로 상징되는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본지 1월 8~9일자 5면)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치권 논의도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국회에 총리 추천·지명권을 부여해 내각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자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현실 정치에 적용하고 제도화할지에 대한 입장은 각 대선주자들과 정당이 처한 입지에 따라 미묘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분권과 협치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대통령의 실패는 결국 국민의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당장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12일 “새 정부가 들어설 경우 국무총리와 국무회의는 의회 다수파, 즉 과반을 점하는 정당 연합에 의해 공유되도록 하겠다”며 국회가 총리 추천·지명권을 갖도록 하자고 제안하면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안 지사는 현행 헌법 내에서도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정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개헌 논란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남 지사는 “국회 선출 총리론은 내가 늘 강조해 온 것으로 개헌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해보지도 않고 걱정부터 하는데 총리에 걸맞은 사람, 협치가 가능한 인성을 갖춘 사람을 추천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는 권력을 나누겠다는 시대정신을 갖느냐, 안 갖느냐의 문제”라며 “대선후보들도 의지만 있다면 공약으로 내세운 뒤 충분히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촛불공동정부’를 꾸려야 하며 여기서 총리도 추천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정권교체뿐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라는 촛불민심에 부합하려면 실질적인 개혁입법이 추진돼야 하는데, 지금 야권의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여소야대 상황을 피할 수 없는 만큼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 촛불민심에 부합하는 세력과 공동정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대선후보 지지도 1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정당 책임정치’를 내세우며 조금은 다른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정당 책임정치를 해야 국정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며 “대선에서 승리하면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정부를 운영할 것이며 총리 인선도 당과 함께 협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국회 다수파가 아닌 원내 제1당인 민주당이 추천하는 총리가 대상이란 점에서 다른 주자들 입장과 궤를 달리한다. 현재 의석 구조상 어느 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문 전 대표가 속한 민주당하고만 협의한다는 것은 기존의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관계와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표 측 김경수 의원은 “국회·정당과 함께 국정을 이끌어갈 것이란 점에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대선 과정에서도 섀도 캐비닛의 인선 기준과 원칙을 미리 제시하는 등 국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현행 헌법하에서는 국회의 총리 지명을 비롯한 분권형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도 이 같은 논리를 내세우며 “제도적 보장, 즉 개헌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DJP 연합 때도 김종필 총리가 책임총리라고 했지만 결국엔 실패하지 않았느냐.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의원도 “국회가 총리 지명권을 갖는다는 것은 현행 대통령제에서는 반헌법적 발상일 뿐”이라며 “차라리 그런 주장을 하려면 먼저 헌법을 바꾸자고 하는 게 순서”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내부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어차피 현재 원내 제1당이 민주당인 상황에서 국회에 총리 지명권을 넘겨봤자 전혀 실익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 깔려 있다.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도 “대통령과 총리는 같은 당이 맡는 게 맞다”며 “특히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총리를 다수당이 지명할 경우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집권하는 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3당인 국민의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 측은 “권력구조 개편 방안은 당에서 곧 정리해 발표할 예정”이라며 말을 아꼈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도 “대통령은 외교·안보 등 외치를 맡고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면 다당제하에서 협치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 또한 제도적 보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세부적으로는 정치권의 시각이 조금씩 엇갈리고 있지만 큰 틀에선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는 점에서 ‘국회 선출 총리’를 상징으로 하는 분권·협치 논의가 이번 대선 정국에서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현 상황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반 이하의 소수당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국회·정당과 공조하지 않을 경우 끊임없는 갈등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분권·협치와 견제·균형 등이 시대적 요구 사항이라는 점에서 국회가 총리를 지명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될 만한 사안”이라며 “다만 국정을 결정하는 권한의 공유가 책임의 공유로 이어져야 향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정치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신홍·김경희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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