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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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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29면

‘쿡방’에 이어 ‘집방’이 주목받기 시작하던 지난해, 집을 지었거나 새롭게 단장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잦았다. 자리마다 공통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집을 꾸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버렸는지에 관한 경험담이었다.


경기도의 넓은 빌라에서 살다 서울 도심 내에 집을 지었던 한 부부는 혼수로 장만한 양문형 냉장고를 부엌에 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협소 주택을 지은 터라 주방이 직전에 살던 집에 비해 작았기 때문이다. 부부는 작은 냉장고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만으로 삶이 조금 달라졌다고 전했다. 대형 마트에서 음식재료를 잔뜩 사다 냉장고를 꽉 채우는 대신 근처 재래시장에서 한 두번 먹을 만큼 장을 보기 시작했다. 냉장고 크기를 줄인 덕에 공간 활용성도 좋아지고,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하게 됐다고 부부는 만족했다. 마트에서 산 ‘1+1’ 제품을 쌓아놓고 든든해 하다 결국 유통기한을 넘겨 버려야 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사는 것(buying)만 생각했지, 사는 것(living)은 생각 못했구나 싶었다.


인테리어 전문가의 조언도 핵심은 ‘버리기’였다. 1인가구공작소 루머스의 옥수정 대표는 원룸에서 사는 싱글족을 대상으로 인테리어 클래스를 열었는데, 총 4회 강의의 첫 주제가 ‘버리기’라고 했다.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는 무엇을 더 할 수도, 예쁘게 할 수도 없다”는 그의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이라는 사람들에게 그는 책 한 권을 권했다. 일본에서 ‘정리의 여신’이라 불리는 곤도 마리에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이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은 일본에서 밀리언셀러로 등극했고 3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전 세계적으로 잘 버리는 사람보다 못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했다. 책에는 다양한 버리기 원칙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랬다.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버려라.’


사실 집을 살펴보면 사람이 쓰는 공간보다 물건이 차지하는 공간이 더 크다. 충동구매로 산 뒤 애정이 식은 물건을 볼 때마다 ‘언제 버리지’ ‘왜 샀을까’라며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설레는 물건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물건을 살 때마다 ‘계속 설렐 수 있는가’부터 생각한다면 충동구매를 줄일 수 있을 터다. 더 나아가 소비습관까지 바꿀 수 있다. ‘지속가능하게 설레는 물건’이라는 구매 기준은 실로 대단한 원칙이다.


옥 대표가 자신의 경험담을 덧붙여 말했다.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큰 집에서 살아야 하고 주거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물건을 쌓아놓기 위해 돈이 들어요. 물건이 없다면 작은 집에서 살아도 되죠. 쌓인 물건 중에 흔히 옷이 가장 많은데, 좋은 옷을 깔끔하게 관리해서 매일 입어도 돼요. 사실 아무도 안 쳐다보거든요.”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사는 것(living)까지 생각해서 사야겠다(buying)고 마음먹게 됐다.


장기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는 미니멀 라이프가 더욱 관심 받고 있다. 관련 저서도 많이 출간되고 있다. 이런 열풍은 한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 센터가 최근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7』에서도 버리기 열풍이 계속될 것임을 전망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한국의 버리기 열풍을 구매의욕의 퇴행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대인의 진화된 구매욕망으로 해석했다. 일명 새로 사기 위해 버린다는 ‘바이바이 센세이션(Bye-Buy Sensation)’이다. 곤도 마리에의 책을 읽으며 설레지 않는 물건을 버리고, 설레는 물건을 살 생각부터 했던 터라 뜨끔했다.


그럼에도 물욕에서 벗어나 단출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다.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 새해가 오지 않았다. 올해는 부디 설레지 않는 물건에서 해방될 수 있길.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더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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