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튀는 장관'에 실망한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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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한 평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지 이틀이 지난 18일, 검찰 내부에서는 이 글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검 검사는 천 장관이 12일 법무부 출입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발언에 대해 "사건에 대해 권한을 가진 법률가는 개인적인 의견을 외부에 표현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본지 1월 18일자 5면>

글을 읽은 많은 검사는 "대단한 용기"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검의 A검사는 "검찰이 설 땅은 법과 원칙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이 글은 1500여 회가 넘는 조회 수와 80여 명이 '좋은 글'이라고 추천하는 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만큼 천 장관의 최근 발언과 행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많은 검사는 천 장관의 돌출 발언을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며 걱정한다. 천 장관의 'X도 모르는 놈' 이라는 거친 표현이 일반인들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검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 검사들은 천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돌출행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천 장관은 "장관으로 오기 전에 '검찰에는 인사청탁이 파다하다'는 소문만 들었는데 막상 와 보니 실제로 있더라. 최근에도 청탁받은 게 있으며 반드시 불이익을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13일에는 "검찰 인사에 일반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발표했다. 한 조직의 인사를 검찰 문화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에게 물어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여론수렴을 거쳐 인사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뜻은 알겠지만 아무래도 '정치인 천정배'의 포퓰리즘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게 검사들의 반응이다. 대검의 A검사는 "검사 인사를 앞두고 인사권자에 대한 반발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견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천 장관에게는 정치인 시절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한다. 취임 초기 검사들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튀는' 행동을 일삼는 천 장관을 보면서 많은 검사는 실망하고 있다.

김종문 사건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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