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년 된 초가 지키는 한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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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변기원 원장이 고조부가 세운 제월당 툇마루에서 선조의 유품인 동의보감을 읽고 있다.

15일 금강 상류에 자리잡고 있는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마을.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비봉산 입구에 다다르자 지은 지 100년은 됨직한 초가(30여평) 한 채가 눈에 띈다.

초가집 처마 밑에는 갈근.나복자.익모초 등 한약재가 담긴 누런 종이 봉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조선 말기 고종황제의 어의(御醫)였던 변석홍(1846~1926)선생이 설립한 한의원 건물이다.

초가 아래쪽에는 현대식 집 한 채가 별도로 지어져 있다. 대문 앞에는 '변 한의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한의원 주인은 변석홍 선생의 4대손인 변기원(46) 원장이다. 그는 고조할아버지가 1902년 이곳에 세운 한의원을 5대째 대를 이어 하고 있다. 올해로 105년째 운영 중인 셈이다. 변석홍 선생은 고종황제의 어의를 5년 정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침략이 본격화될 무렵인 1902년 "왜놈의 녹은 받을 수 없다"며 이곳에 내려와 한의원(제월당)을 열었다. 1800년대 말 왕의 명에 따라 백성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이 마을에 들렀다가 수려한 경관에 반해 한의원 터를 잡은 것이다.

초가 안에는 지금도 약장(한약재 담는 서랍장.116칸)과 약재를 썰었던 작두, 동의보감 등 고인의 유품이 남아있다.

변 선생의 아들 영목(1878~1923)씨는 23년 45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영목씨의 아들 상훈(1902~1989)씨는 침구 의술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노태우 전 대통령이 상훈씨에게서 약을 지어다 먹기도 했다. 상훈씨의 손자인 변기원 원장은 중풍과 어지럼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변 원장은 "치료가 쉬운 환자를 상대하는 것보다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돌보는 게 훨씬 보람있어 전공을 이 분야로 택했다"고 말했다.

변 원장은 8세 때부터 한의원에서 할아버지 심부름을 하며 자랐다. 작두로 한약재를 자르고, 툇마루에 순번대로 환자를 앉히거나, 처방전을 받아 약 조제방에 갖다 주는 일도 했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한의사가 아닌 연기자였다. 하지만 "한의사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변 원장은 84년 원광대 한의대를 나온 이후 줄곧 이곳에서 환자를 돌봐왔다. 그러나 산골로 찾아오는 것을 불편해 하는 환자가 많아 최근 서울에도 한의원을 냈다. 하지만 주말에는 어김없이 고향에 내려와 형편이 어려운 환자나 노인 등을 상대로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www.okbyun.co.kr)에서 무료로 의료 상담도 해준다. 그는 집 주변 밭 1만5000여 평에 감곡 등 20여가지 약재를 무농약 농법으로 재배해 사용한다.

영동=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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