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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시인 블랙리스트 피해 봤다

중앙일보

입력

진보 성향 문인단체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낸 이시영(68) 시인이 자신도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11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다. 이씨는 지난해 2월 자신을 포함한 문인 네 명이 미국 하와이대와 버클리대의 문학 행사 초청을 받아 한국문학번역원에 항공료 지원을 요청했으나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과 다른 한 사람이 항공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밝혔다. 나머지 두 사람의 항공료만 나왔다는 것. 결국 버클리대에서 항공료 티켓을 지원받아 문학행사에 참가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자신도 블랙리스트 대상자였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씨의 글은 소설가 김연수와 김애란이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바람에 2015년 미국 듀크대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10일 SBS 보도에 호응해 나온 것이다. SBS는 김연수, 김애란 두 작가가 북미 한국문학학회의 요청을 받아 2015년 11월 듀크대의 문학행사에 참가하려 했으나 한국문학번역원이 "그 두 작가를 위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초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했다는 내용을 학회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면서 두 작가가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세월호 추모 글 모음집 『눈먼 자들의 국가』에 글을 실었다는 사실을 함께 소개했다. 한국문학을 알려야 할 정부기관이 유명 작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외국 진출을 막은 정황이 있다는 얘기다.

이시영 시인은 두 작가 관련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세세하게, 엄밀하게 작동되었다" "이번에 다 바꿔야 한다. 그게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급박하며 실행적인 임무다. 조윤선 장관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실토'했으니 번역원, 문화예술위, 출판문화진흥원도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안 밝히면 우리가 밝힌다!"고 썼다.

다음은 이씨의 페북 글 전문.

'sbs 보도에 의하면 김연수 김애란 두 소설가가 작년 미 듀크대 초청행사에 초청을 받고도 문체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 전 서울대 교수)측의 비협조로 결국 가지 못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규탄성명에 이름을 올리거나 이와 관련된 글을 쓴 것 때문이라는 것.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세세하게, 엄밀하게 작동되었다.

작년 2월 나와 다른 세 분이 미 하와이대와 버클리대 문학행사 초청을 받아 한국문학번역원에 항공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런데 네 사람 중 나와 다른 한분은 항공료를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예산이 없다는 것. 결국 두 분은 번역원 지원으로, 나와 다른 한분은 버클리대가 제공한 비행기 티켓으로 하와이대와 버클리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블랙리스트라는 걸 최근에 와서야 실감한다. 우스운 것 하나는, 공항에 가서 여행자보험을 들려고 했더니 이 보험만큼은 번역원이 지원해주었다는 것. 국가의 '은혜'에 새삼 감사드린다.

'개혁'은 쉬운 과제가 아니겠으나 바로 이런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하나하나 바로잡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체부 산하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박명진 전 서울대 교수), 한국출판문화진흥원, 한국콘텐츠진흥원 등등 유독 '진흥'자가 붙은 수많은 예술문화기관들의 실체가 이렇다. 이번에 다 바꿔야 한다. 그게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급박하며 실행적인 임무다. 조윤선 장관이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실토'했으니 번역원, 문화예술위, 출판문화진흥원도 사실관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 바란다. 안 밝히면 우리가 밝힌다!'

신준봉 기자 shin.juneb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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