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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창고] 비슷한 듯 다른 ‘활들의 불꽃 춤’ … 현악4중주 그 오묘한 화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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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클래식 아벨 콰르텟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아벨 현악4중주단. 실내악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팀이 두 번째 정기연주회를 연다. [사진 목 프로덕션]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입상 소식을 전하고 있는 아벨 현악4중주단. 실내악에 대한 사명감을 가진 팀이 두 번째 정기연주회를 연다. [사진 목 프로덕션]

20대 4명 독일서 공부하다 악단 꾸려
하이든·리옹·제네바 … 콩쿠르 잇단 수상
13일 세종문화회관서 하이든 3곡 연주

‘우리나라엔 제대로 된 실내악 팀이 없다.’ 이 문장이 이상하다 여길 수도 있다. 정명화·경화·명훈으로 된 피아노 3중주단 ‘정트리오’가 세계적 음반회사인 도이치그라모폰에서 앨범을 낸 게 1980년대다. 그 후로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 트리오가 있었던가. 그런데 실내악 역사가 깊지 않다니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현악4중주 이야기다. 거칠게 말하면 하이든 이후의 거의 모든 작곡가가 현악4중주라는 장르에 매진했다. 모차르트는 특유의 조형미를 현악4중주에서 발전시켰고, 베토벤은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나아가는 문턱으로 현악4중주를 사용했다. 이후 바르토크·라벨 뿐 아니라 윤이상, 볼프강 림 같은 20·21세기 작곡가들이 독자적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르로 썼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연주하는 현악4중주는 오묘한 세계다. 피아노 트리오와는 결이 다르다. 현악기와 피아노의 조합은 현악기끼리 만날 때보다 비교적 쉽게 조율된다. 하지만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음색이 다른 현악기끼리는 아주 예민하지 않으면 웬만한 수준의 화음을 내기 쉽지 않다. 음정을 정확하게 맞추더라도 완전한 조화를 만드는 것은 힘들다는 뜻이다. 그래서 현악4중주단은 소위 ‘프로젝트 팀’으로 활동하기 쉽지 않다.

현악4중주단은 단원들이 ‘상근’하면서 실내악만 해야 제대로 된 수준에 올라갈 수 있다. 독주자들이 때마다 모였다 흩어지곤 하는 피아노 트리오와 다른 점이다. 피아노 트리오는 화기애애하지만 현악4중주는 불꽃 튀는 경쟁과 화합이 공존한다. 많은 작곡가가 스타일 정립을 위해,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현악4중주를 선택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아벨 콰르텟의 등장은 그래서 반갑다. 어렵고 오묘한 조화의 현악4중주에 작정하고 뛰어든 연주자들이다. 20대 연주자인 윤은솔·이우일(바이올린), 김세준(비올라), 조형준(첼로)은 독일에서 공부하던 중 만나 2013년 현악4중주단을 만들었다.

독주자가 아니라 콰르텟으로서 음악 캠프에 참가해 세계적 연주자의 지도를 받았고, 뮌헨 국립음대에서는 아예 실내악으로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료한 후 스위스 바젤 국립음대에서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의 실내악팀 지형이 ‘선(先) 독주, 후(後) 실내악’에서 변화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은 콰르텟으로 음악대학을 다니고 콩쿠르에 출전하는 ‘전업 실내악단’의 모범이다.

한국인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늘 따라붙는 지적은 ‘독주에만 집착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인구 대비 클래식 연주자가 많은데 거의 모든 음악학도가 독주자를 꿈꾸고 어려운 길을 간다. 다른 연주자와 함께하는 실내악은 시간이 남을 때, 혹은 음악대학 학점을 따기 위해 하는 활동에 불과한 게 오래된 현실이었다. 지금껏 세계무대에서 전해진 한국 연주자들의 성공 스토리 또한 대부분 독주자의 것이었다. 청중의 관심도 연주자들의 미래도 마치 독주 무대에만 있는 듯했다.

아벨 콰르텟은 이런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다. 지난해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 현악4중주단 최초로 입상했다는 소식이 예사롭지 않았던 이유다. 아벨 콰르텟은 그 전에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 1위, 리옹 국제 실내악 콩쿠르 2위 등 5개월 동안 3개의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이름을 빛냈다.

이들은 국제 콩쿠르에 독주자로 참가해서도 여러 번 입상했던 연주자들이다. 쟁쟁한 실력의 독주자들이 4년 동안 함께 갈고닦은 소리는 평범치 않다. 젊은 팀답게 날이 선 소리는 생생히 살아 펄떡인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해석은 보수적인 편이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템포, 갑작스럽게 튀거나 심하게 굴곡지지 않은 프레이징은 정통적이면서 젊은 현악4중주단의 정체성이다.

때마침 ‘전업 실내악단’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연주자들이 결성해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노부스 콰르텟, 프랑스 파리 유학 경험을 매개로 만난 트리오 제이드 등이다. 이들은 독주자 중심이었던 한국 음악계에 앙상블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다. 그동안 실내악 공연은 눈에 띄는 주인공이 없어 스타 독주자들의 공연에 밀렸다. 규모 면에서는 대형 오케스트라 공연에 뒤져 흥행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등장하는 새로운 실내악단들은 ‘스타 팀’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면서 새 영역을 가꾼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미래와 변화하고 있는 지형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 아벨 콰르텟의 무대를 권한다. 이들은 착실하게도 ‘정기연주회’라는 이름을 달고 음악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8월 첫 정기연주회를 열었고, 이달 열리는 공연이 두 번째다. 이번에는 현악4중주를 하나의 음악 장르로 정립한 하이든을 조명한다. 하이든의 현악4중주 세 곡을 골라 연주하며 단단히 경력을 쌓아올리는 실내악단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번 무대엔 바이올린 이우일 대신 게스트로 박수현이 출연한다. 13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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